“기름값 없어 학교 못 가”…인플레로 교육 기회 잃는 인도네시아 저소득층

김서영 기자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에서 지난 6일(현지시간) 어부들이 바다에서 돌아오고 있다. 기름값 상승은 전통적인 어업 종사자들의 비용을 증가시켰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에서 지난 6일(현지시간) 어부들이 바다에서 돌아오고 있다. 기름값 상승은 전통적인 어업 종사자들의 비용을 증가시켰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에서 유가 상승을 비롯한 인플레이션 탓에 아동들이 음식과 학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발리에 사는 건설 노동자 아이 마데 누카는 지난 7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는 소득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는 데에 사용할지, 아니면 가족의 식비에 보탤지를 두고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스물한 살인 그의 큰 아들은 2년 전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학자금 1000만루피아(미화 665달러)를 갚지 못했다. 이 때문에 졸업증명서를 받지 못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교복과 책값 등 약 110만루피아(미화 73달러)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아이 마데 누카의 가족이 자녀의 학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그는 수입이 좋은 달엔 210만루피아를 벌어 세 끼 식사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달 유가가 오르며 오토바이에 연료를 채우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는 데에 제한이 생겼다.

특히 식용유를 비롯한 기본 식료품 가격이 올라 타격이 크다. 식용유 가격은 지난해 8000루피아에서 올해 1만2000~2만루피아로 올랐다. 인도네시아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4.69%였으며 지난 7월엔 4.94%로 최근 7년 중 최고치였다고 SCMP는 전했다.

한 주민은 “인플레이션을 체감하고 있다. 쌀은 1kg당 1만루피아였으나 이젠 1만2000루피아로 올랐다. 2000루피아 상승도 내겐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를 해서 매일 3만5000루피아가량을 번다. 그는 “아이들 점심으로 반찬을 살 돈이 없으면 그냥 밥을 볶아서 준다”고 했다.

연료 보조금을 감축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연료 보조금을 감축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처럼 물가 상승이 기본적인 생계를 위협하는 탓에 아동들의 학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비영리 단체 ‘발리 어린이프로젝트’의 지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아동들의 숫자는 2020년 474명에서 현재 584명으로 늘었다. 후원 매니저 아나스타샤 라하유는 “많은 학생들, 특히 직업학교 학생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훈련 장소로 가기 위해 기름을 사려고 분투하고 있다. 부모가 더이상 연료를 살 수 없어 직업학교에 가려는 꿈을 포기한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국가아동보호위원회 레트노 리스티아트리 위원은 “유가 인상에 따라 학교를 중퇴할 위험이 있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학비가 무료여도 학생들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교통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올해 9조6000억루피아 예산을 들이기로 한 ‘스마트 인도네시아’ 정책의 데이터베이스(DB)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요건에 해당하지만 지원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아 혜택에서 배제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스마트 인도네시아 정책은 정부가 빈곤층의 낮은 취학률과 학업 중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8년 도입한 복지 정책이다.

리스티아트리 위원은 또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둔다면 여자아이들은 조혼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면서 “초등학교만 졸업해서는 일자리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부모가 돼서도 자녀를 지원하지 못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SCMP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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