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는 짐 싸지만 나는 남는다옹”···다우닝가 10번지 지키는 ‘고양이 보좌관’

이인숙 기자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쥐를 잡는 일을 하는 고양이 ‘래리’.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쥐를 잡는 일을 하는 고양이 ‘래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3일 6년 동안 머물렀던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를 떠났다. 캐머런 내각도 모두 물갈이됐다. 그러나 캐머런과 함께 했던 ‘고양이 보좌관’ 래리만은 남아 쥐 잡는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12일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 따르면 총리 관저 대변인은 “래리는 공무를 맡은 고양이로 캐머런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관저에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얼룩고양이 래리는 2011년 2월 4살 때 다우닝가 10번지에 들어왔다. BBC가 관저를 배경으로 생방송을 진행할 때마다 큼지막한 쥐가 관저 정문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 여러 차례 화면에 잡힌 것이 계기였다. 총리실은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래리는 배터시 유기견묘센터에 있던 유기묘로 심사를 통해 선발됐다. 래리의 임무는 총리 관저에 종종 출몰하는 쥐를 잡는 것이다. 공식 직책은 총리 관저 수렵보좌관(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이다.

총리 관저는 1924년부터 쥐를 잡는 고양이를 고용해왔다. 그러나 총리 부부의 취향 때문에 공석인 적도 있었다. 고양이 험프리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총리 관저에서 일했으나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관저에 들어온 뒤 블레어의 부인 셰리가 고양이를 싫어해 관저를 나가야 했다. 2007년 관저의 주인이 고든 브라운 총리로 바뀔 때까지 관저에는 고양이가 살지 않았다.

영국 총리 관저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고양이 래리를 쓰다듬고 있다. |백악관

영국 총리 관저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고양이 래리를 쓰다듬고 있다. |백악관

래리는 다우닝가에서 캐머런 총리의 부인 사만사와 아이들, 총리실 직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래리의 인기는 유기묘 입양이 느는 데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래리의 쥐를 잡는 능력은 물음표다. 게으르고 사냥 본능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던 중 래리는 2012년 9월 캐머런 앞에서 지나가는 쥐를 지켜만 보다가 경질되는 굴욕을 겪었다. 옆집 11번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 관저에서 쥐 잡는 능력을 인정받은 프레야가 총리 관저로 영입되면서 래리는 프레야에게 수석수렵보좌관 자리를 내줬다.

프레야가 2014년 11월 은퇴하고 켄트로 가면서 비로소 ‘불편한 경쟁자’가 사라졌다. 하지만 래리는 지난 4월부터 재무장관 관저에 새로 들어와 활약하고 있는 고양이 파머스톤과 종종 비교당하고 있다.

13일 물러나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12일 영국 서부의 무료학교 리치 아카데미를 방문해 어린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13일 물러나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12일 영국 서부의 무료학교 리치 아카데미를 방문해 어린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캐머런은 12일 총리 관저에서 마지막 각료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내무부장관으로 회의에 참석한 다우닝가 10번지의 새 주인 테레사 메이 차기 총리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캐머런을 치하했다. 캐머런은 회의 후 런던 아동 2만명이 공부할 수 있는 무료학교 31곳이 승인된 것을 계기로 런던 서부의 한 무료학교를 방문했다. 총리로서 마지막 일정은 다소 쓸쓸했다. 이날 함께 걸음 한 장관은 없었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브렉시트’로 결론나자 캐머런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당초 9월 전당대회에서 차기 총리에 오를 당 대표가 선출된 후 물러날 예정이었으나 메이 장관의 마지막 남은 경쟁자였던 안드레아 리드섬 에너지 차관마저 지난 11일 경선을 포기하면서 일정이 앞당겨졌다.

13일 물러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관저 고양이 래리를 무릎에 앉힌 채 일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트위터

13일 물러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관저 고양이 래리를 무릎에 앉힌 채 일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트위터

캐머런이 래리를 관저에 두고 떠나는 것을 두고 영국 언론에서 ‘캐머런이 사실 래리를 싫어했다’ ‘래리는 캐머런 가족이 머무는 공간에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캐머런은 진화에 나섰다. 그는 13일 자신의 개인 트위터에 “(내가 래리를 사랑한)증거”라며 무릎 위에 래리를 앉힌 ‘인증사진’을 올렸다. 또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진행된 마지막 총리 질의응답에서도 래리를 특별히 언급하며 “내가 래리를 싫어한다는 루머를 막아야겠다. 나는 래리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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