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중동과 아시아의 권위주의 국가에 최루탄을 수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산 최루탄은 2011년 중동의 ‘아랍의 봄’ 시위와 2019년 홍콩의 민주화 시위 진압에 두루 쓰였다. 영국 정부가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나라에는 최루탄 수출을 금한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영국 인권단체 ‘무장폭력에 대한 행동(AOAV)’은 13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2008년부터 전 세계 70개 국가에 최루탄 수출을 승인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최루탄 수출 승인국에는 영국 외교부가 ‘인권 우려 국가’로 지정한 방글라데시, 바레인, 이집트, 몰디브, 사우디아라비아, 스리랑카 6개국이 포함됐다.
영국은 “시민 억압에 쓰일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해당 국가에 최루탄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영국산 최루탄은 홍콩에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던 2019년 시위 진압에 쓰였다. 논란이 커지자 영국 정부는 같은해 6월 “인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홍콩에 최루탄과 고무탄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영국산 최루탄은 2011년 중동에 불어온 ‘아랍의 봄’ 때도 쓰였다. 영국이 최루탄을 수출한 바레인에서는 시민 최소 13명이 경찰이 쓴 최루탄에 맞고 숨졌다. 논란이 커지자 영국은 2012년 바레인에 최루탄 수출을 보류했다가 2013년 재개했다. 영국산 최루탄은 그해 바로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대에게 다시 쓰였다. 오만에서도 지난 5월 높은 실업률과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영국산 최루탄이 쓰였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19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공장 여성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1명이 숨졌지만, 영국은 이듬해 방글라데시에 4만761파운드(약 6700만원)어치의 최루탄 추가 판매를 승인했다.
한국도 중동과 홍콩, 태국 등에 최루탄을 팔았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최루탄 342만발과 최루탄 발사장치 1만9619정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국가로 수출했다. 한국이 홍콩과 태국에 판 최루탄 발사장치가 2019~2020년 홍콩 민주화 시위, 2020~2021년 태국 민주화 시위 진압에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최루탄은 실명과 사망을 포함한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무기다. 최루탄에 대한 기본적인 국제 통계조차 제대로 없는데다, 최루탄 오남용에 대한 합의된 국제 규정도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유엔 차원에서 최루가스 등의 시위대 진압용 무기 수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