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전으로 가는 전쟁, 푸틴은 언제 멈출까

정원식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전 후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고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다. 막상 전황은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침공 한달을 맞는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까지도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를 장악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외곽 15㎞ 지점에서 현재 진격을 멈춘 상태다.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

동부 하르키우 인근 이지움 등 일부 지역에선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CNN에 “우크라이나군이 곳곳에서,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러시아군을 쫓아내고 있다”며 “우리는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이 늘어나는 걸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인적·물적 손실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최소 7000명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3월 3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 90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러시아 쪽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20일 러시아의 친정부 매체인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홈페이지에는 러시아군 전사자가 9861명, 부상자가 1만6153명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곧바로 삭제됐다. 언론사는 해킹으로 잘못된 기사가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네덜란드의 싱크탱크인 앨펀그룹 의장으로 전직 장성 출신인 벤 호지스는 워싱턴포스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복 전쟁은 러시아의 공격 능력과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 중 어느 쪽이 먼저 한계점에 도달하느냐의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침공을 지속할 시간과 인력, 탄약이 러시아에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CNN에 러시아군 전력이 90% 이하로 떨어졌고 방한 장비 부족으로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기도 크게 저하된 상태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이미 지난 3월 19일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초기 공격을 물리쳤다”면서 전쟁이 교착상태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상대방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화력을 쏟아붓는 소모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의 국방정보 국장인 짐 호켄헐 장군은 아이뉴스에 “러시아가 작전을 변경해 이제 소모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는 화력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민간인 사망자 증가,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 파괴, 인도적 위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개전일인 지난 2월 24일 오전 4시부터 3월 23일 0시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어린이 81명을 포함해 모두 977명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다친 민간인은 어린이 108명을 포함해 1594명으로 집계됐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가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고 있다. /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가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고 있다. / AP연합뉴스

■푸틴의 ‘플랜 B’는?

러시아가 소모전 전략으로 변경하면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커질 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 개전 이후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은 주거지와 군사시설을 가리지 않는 러시아의 무차별 포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마리우폴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마리우폴은 물과 전기마저 끊긴 상태다. 폭격으로 무너진 마리우폴 극장에는 수백명이 피신해 있었으나 러시아군이 공격을 멈추지 않아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점령군은 마리우폴의 안녕과 미래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는 게 분명하다”면서 “그들은 마리우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잿더미의 죽은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무력에 의한 우크라이나 제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푸틴 대통령이 고의로 민간인 피해를 키우는 ‘플랜 B’를 가동했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3월 20일 칼럼에서 푸틴의 ‘플랜 B’는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아파트, 병원, 사무용 건물, 대피소 등을 공격해 사람들이 집을 떠나게 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내부,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 내부에 거대한 ‘난민 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여성, 어린이, 노인 등 500만~1000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헝가리, 서유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 나토 회원국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제시하는 조건대로 평화협정에 서명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이미 360만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절반인 214만명이 폴란드로 들어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영유권 인정,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 합병, 나토 가입 포기, 비무장 중립국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은 중립국화 논의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봤으나 영토 문제에서는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소형 핵폭탄이나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함부르크대학 핵 전문가인 울리히 쿤은 뉴욕타임스에 “푸틴 대통령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소형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쿤 박사는 더욱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차원에서 러시아가 북해상에서 소형 핵폭탄을 폭발시키는 시나리오를 연구한 바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건 끔찍한 일”이라면서도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 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러시아군이 지난 3월 초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은 그냥 들어가 총을 쐈다. 이는 핵에 대한 러시아의 안이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23일 일본 국회를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가 사린 등의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화학·핵무기 보호 장비를 추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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