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한마디에 징역 2년7개월···에르도안, 정적 제거 나섰나

박효재 기자
튀르키예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2019년 6월23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튀르키예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2019년 6월23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튀르키예 법원이 선거관리위원회를 모욕한 혐의로 자국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모을루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내년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에 맞설 야당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에르도안 정권이 사법부를 동원해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등 대통령 정적 제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스탄불 법원은 14일(현지시간) 이마모을루 시장이 2019년 3월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선거 결과를 무효로 처리한 선관위에 대해 “바보”라고 말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7개월을 선고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바보”라는 표현은 자신에게 먼저 “바보”라고 말했던 당시 내무장관을 겨냥했던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2019년 3월 이스탄불 시장 선거 당시 개표소 감시원을 공무원 중에서 선정해야 하는 선거법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재선거를 요구했다. 튀르키예 선관위는 이를 수용하면서 그해 6월 재선거가 치러졌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첫번째 선거에서 0.16% 포인트 차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후보로 내세운 전직 총리 비날리 이을드름에 신승했으며 재선거에서는 격차를 10%포인트 가까이 늘리며 압승을 거뒀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을 지내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마모을루의 승리로 AKP의 이스탄불 시장직 독점은 25년으로 마감하게 됐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이날 법원 판결 직후 사법부가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와 집단을 처벌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날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시청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면서 이번 판결을 “거대한 불의”로 규정했다. 이어 “튀르키예가 침몰하는 상황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면서 “이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정의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앞서 이마모을루 소속 정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이스탄불 시당위원장인 자난 카프탄즈오을루는 트위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강도로 묘사해 모욕한 혐의로 지난 5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헌법재판소는 내년 1월 쿠르드족 대변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의 정치활동 금지에 관한 최종 결정도 내릴 예정이다. 헌재는 지난해 6월 HDP 폐쇄를 비롯해 쿠르드 분리독립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인사 500명에 대한 정치활동 금지를 요구하는 공소장을 받아들였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항소 기간 동안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공판심리 절차에 최대 1년6개월 가량 묶일 수 있다는 점은 위험요소다. 내년 6월 치러지는 대선과 총선은 물론 2024년 3월로 예정된 지방선거 때까지 출마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소 결과 유죄로 확정되도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에르도안 정권이 대권 경쟁자가 될 만한 인물 제거하는 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올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201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리라 가치가 3배 가까이 폭락하고, 물가상승률이 84%를 넘어서는 등 경제 상황이 극도록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이마모을루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로 에르도안 대통령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선투표까지 간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에 더 큰 표차로 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사업가 출신에 실용주의 성향으로 에르도안 정부의 경제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 이슬람 권위주의 통치로 회귀에 반대하는 세속주의 성향 민족주의자, 쿠르드족에까지 두루 호소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CHP는 이번 총선에서 5개 정당과 연합해 총선을 치르는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설 대선 단일화 후보를 낼 예정이다. 앞서 이마모을루 시장은 우선 시장 재선에 성공한 뒤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론 추이에 따라 대선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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