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전쟁, 시민은 없었다

손우성 기자

이스라엘·하마스 사흘째 교전

<b>살려야 한다</b> 팔레스타인 남성이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아이를 안고 가자지구의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밤 사이 가자지구를 500여차례 공격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살려야 한다 팔레스타인 남성이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아이를 안고 가자지구의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밤 사이 가자지구를 500여차례 공격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정치 위기 몰리자 ‘전쟁’으로 시선
이 “가자지구 전기·식량 끊고 봉쇄”
입지 강화·내부 결집 이득 노리지만
피해는 무고한 민간인 몫으로 남아

이스라엘 극우 정부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참혹한 전쟁은 ‘적대적 공생관계’인 두 극단세력이 각자의 입지 강화를 위해 켜켜이 쌓아올린 갈등의 결과물이다. 각종 논란과 실정으로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하마스 모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 결집을 도모하는 등 오히려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다. 이로 인한 정치적 대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로써 치러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약 700명이 사망했다고 8일 밤(현지시간) 밝혔다. 레임 키부츠 음악축제 행사장에서는 시신 260구가 발견됐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도 413명이 숨졌다. 부상자도 이스라엘 2100명, 가자지구 2300명으로 집계됐다. 피란민도 속출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8일 오후 9시 기준 팔레스타인인 12만3538명이 피란 행렬에 올랐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처참한 현장 영상과 사진이 게재되고 있다. 특히 하마스 대원이 납치한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알몸으로 강제 행진을 하고, 이들을 향해 사람들이 침을 뱉는 등 잔혹한 장면이 다수 노출됐다. 팔레스타인 측 SNS 계정에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일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측이 9일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겠다고 밝히면서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다”라고 선포함에 따라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이라 불리며 빈곤에 허덕여온 23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최근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 이스라엘 극우 내각과 하마스가 결국 갈등 임계치를 넘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재집권한 네타냐후 총리는 국제사회 비판에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강행해 팔레스타인의 반발을 자초했다. 대표적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올해 세 차례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팔레스타인 사회를 도발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네타냐후 정부에는 정치적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네타냐후 정부는 사법부 무력화 시도로 격렬한 시위와 야권의 반발에 직면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야권 정적들의 협력 가능성을 이끌어냈다. 냉각된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가자지구 팔 주민들도 “이번 공격은 상상도 못했다”

하마스도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8월 가자지구에서는 이례적인 하마스 규탄 시위가 열렸는데, 최악의 경제난과 에너지 부족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이 참아온 분노를 터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마스의 폭정이 시위를 촉발한 원인으로 꼽혔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중동 데탕트’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도 하마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었다. 결국 하마스는 이스라엘 타격으로 분위기 전환에 나섰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내에서조차 하마스의 공격에 충격을 드러내는 반응들이 나왔다. 이스라엘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전쟁을 선포했지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지난 70년 동안 매일이 “전쟁” 상황이었다.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 응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 공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등 착잡하고 복잡한 표정이었다. 가디언은 “가자지구의 많은 사람은 끊임없는 봉쇄와 반복되는 전쟁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며 “희망 없는 삶에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번 전쟁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더 나아가 아랍계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반목과 증오를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매체 미들이스트아이는 극우 유대인 민병대가 활개 칠 움직임이 보이면서 이스라엘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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