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텍사스, 임신 6주 이후 중절 금지법 시행...사실상 임신중단 금지여서 사회적 논란 가열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미국  여성들이 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 정부 청사 앞에서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이후로는 임신중절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텍사스의 임신중절 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오스틴 | AP연합뉴스

미국 여성들이 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 정부 청사 앞에서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이후로는 임신중절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텍사스의 임신중절 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오스틴 |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에서 임신 6주가 지나면 중절 수술을 못하도록 해 사실상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률이 1일(현지시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연방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요청에 대법원이 침묵하면서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텍사스에서 이날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이후로는 임신중단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심장박동법’이 시행됐다고 보도했다. 이 법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20주까지였던 금지 시기를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될 때인 6주로 대폭 앞당겼다. 임신 자체를 자각하지 못할 수 있는 시점을 금지 시점으로 설정해 사실상 임신중당 권리를 원천 금지한 것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에 따르면 텍사스에서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여성의 85~90%는 임신 뒤 최소 6주가 지난 이후 수술을 받고 있다.

텍사스의 새 법은 특히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따른 임신의 경우에도 중절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 주 정부는 불법 임신중단 단속에서 손을 떼고 중절 시술 병원 등에 대한 제소를 100% 시민에게 맡겼다. 법이 정한 시점 이후 임신중절 수술을 시행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병원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시민에게 1만달러(약 116만원)를 제공하기로 했다. 임신중단 권리를 찬성하는 이들이 법 시행을 막기 위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법률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긴급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못한 것도 이 법이 기존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효력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텍사스에서 임신중단 수술을 시행하는 병원들은 이 법의 효력이 발효되기 직전인 지난달 31일 자정까지 임신중단을 원하는 임신부들을 수술하느라 긴박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텍사스에서 임신중단 수술을 하는 대표적인 병원인 ‘온전한 여성 건강 병원’ 측은 1일 새벽 0시부터 임신 6주 이상 지난 임신부에 대한 임신중단 수술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임신 6주가 지난 이후 임신중단을 원하는 텍사스 거주 임신부는 앞으로는 텍사스가 아닌 다른 주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태아가 임신부의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단계 이전에는 임신중단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됐다. 이후 이 판결을 근거로 임신중단 금지 시기가 20주 이전으로 정착됐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이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임신중단 옹호 단체들은 소송을 통해 이런 노력을 무력화시켰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에서는 약 30개주에서 임신중단 금지 관련 법안이 도입됐고, 15개주는 임신 6주가 지나면 중절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각주의 임신중단 금지 법안은 모두 법원에 가로막혀 시행되지 못했지만 이번에 대법원의 판결이 지연되면서 텍사스주의 법이 먼저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에서 임신중단 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대표적 이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이 갈리는 대표적인 주제여서 정치권의 논쟁도 격화될 전망이다.

임신중단 반대 단체 ‘생명 행동’의 창립자 리일라 로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제 위대한 텍사스에서는 심장 박동을 감지할 수 있는 모든 태아들은 임신중절 폭력에 의한 죽음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됐다”면서 “기본적 인권을 위한 역사적 조치이며 더 많은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의 이 극단적인 법은 주제 넘게도 거의 반 세기 동안 로 대 웨이드 판결로 확립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면서 “이 법은 여성, 특히 유색 인종과 저소득층 여성들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거의 50년 전에 내려진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확립된 헌법상 권리를 지키고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대법원이 이 법의 시행 전에 판결을 내리는 데 실패했다면서 “텍사스 여성들에게 재앙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긴급요청을 기각한 것이 아니라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임신중단 찬성 단체의 법 시행 중단 요청을 받아들이면 법의 효력은 즉시 중지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연달아 임명하면서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대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로 재편된 상태다.

텍사스의 임신중단 금지 법안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보수적인 주들도 줄줄이 이를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대법원이 법 시행 전에 개입할 것이라는 임신중단 찬성론자들의 희망과 달리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서 미국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텍사스가 임신중단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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