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호주 이어 베네수엘라서도 여자축구 ‘미투’…“조직이 가해자 감싸고돌아”

윤기은 기자

미국 여자축구팀 선수들의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폭로 이후 각국 여자 축구 선수들의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십대 시절 선배 선수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호주 선수에 이어 베네수엘라 여자축구 국가대표 선수들도 전 감독이 선수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아왔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언론 엘나시오날은 6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 24명이 전날 베네수엘라팀 감독이었던 케네트 세레메타가 2013년부터 4년간 선수들에게 신체·정신적 학대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우리 중 다수는 아직도 정신적 상처에 시달리고 있다”며 “전 세계 축구계에서 세레메타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와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침묵을 깨기로 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여자축구팀 선수들은 성명에서 세레메타 전 감독이 자신의 숙소로 오라고 권유하는 연락을 하고, ‘부적절한’ 선물을 줬다고 폭로했다. 성명에 따르면 세레메타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마사지를 하거나 뇌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익명의 한 선수는 14살 때부터 그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세레메타 전 감독은 성폭력 의혹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파나마 출신의 세레메타는 2008부터 2017년까지 베네수엘라 청소년·성인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으며, 2017년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공개발언한 이후 경질됐다. 이후 연이어 도미니카공화국과 파나마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폴 라일리 감독. 위키피디아

폴 라일리 감독. 위키피디아

여자축구계 미투는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팀의 폴 라일리 전 감독이 소속 선수들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시작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들은 라일리가 한 소속팀 선수를 성폭행하고, 다른 2명의 소속팀 선수에게는 성적인 사진을 보내도록 강요했다고 전했다.

라일리 전 감독은 해당 의혹에 대해 부인했지만, 시네이드 패럴리, 멜리나 심 등 다른 선수들도 라일리 전 감독의 성희롱 피해 사실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줄줄이 털어놓았다. 결국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팀은 지난주 라일리 감독을 해고했다. 지난 8월 이후 미국여자축구리그(NWSL) 소속 감독·코치 중 성 추문으로 해고된 것은 라일리 감독이 세 번째다.

호주 여자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 리사 디 배나가 지난해 12월8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맬버른 빅토리 W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

호주 여자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 리사 디 배나가 지난해 12월8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맬버른 빅토리 W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

호주 여자축구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동했다 현재 은퇴한 리사 디배나도 17세였던 2001년 당시 호주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선배 선수들로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신체척 폭력을 당했다고 호주 데일리텔레그래프에 지난 5일 말했다. 디배나는 “20년 동안 선수로 뛰면서 문화적 문제를 보았으며, 가해 행동에 대한 결과와 책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 선수들은 가해자와의 위계 관계로 인해 그간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특히 세레메타 전 감독과 라일리 전 감독 모두 소속 팀의 경기 실적이 우수해지도록 이끌어 축구계에서 명감독으로 평가받던 인물들이었다. 성명을 낸 베네수엘라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세레메타 전 감독의 영향력과 힘이 세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피해 사실을 알려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연맹의 구조적 문제도 비판받고 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앨릭스 모건 선수는 자신이 NWSL에 라일리 감독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선수들에 대한 조사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디배나 선수도 트위터에 “선수를 학대한 가해자를 오히려 감싸고도는 조직문화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각국 축구연맹은 선수들의 폭로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미국축구협회는 여자축구리그 내 성추문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호주축구연맹(FA)은 “리사가 공식 채널을 통해 문제제기한 이후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며, 가해 사실이 확인되면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축구연맹(FVF)은 지난 5일 “항상 여성을 지지하겠다”는 성명을 내놓았으며, 베네수엘라 검찰은 같은날 세레메타 전 감독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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