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부터 카타르까지, 다시 떠오른 ‘스포츠워싱’ 논란

박용하 기자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 AFP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 AFP연합뉴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카타르 월드컵의 개최를 앞두고 ‘스포츠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개최국들이 스포츠 행사를 자국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는데 치중하고, 그간 지적받은 인권 문제는 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이들 정부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에 기대 성공적인 이미지 세탁을 노리고 있으나, 스포츠워싱에 민감해진 대중들의 분위기는 변수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스포츠를 통해 문제를 가리려는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스포츠워싱, 왜 반복되나

과거 다수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스포츠 경기를 이미지 개선에 활용해 왔다. 1934년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이 월드컵을 유치해 정치적 기반을 굳건히 하고, 파시즘을 홍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동유럽의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이 이같은 행보를 보였다. 아제르바이잔은 고문과 인권 침해로 논란이 많았으나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포뮬러원(F1) 그랑프리,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 등을 연달아 유치했다. 이를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스포츠워싱이란 신조어도 아제르바이잔의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스포츠워싱 논란은 특히 내년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을 앞두고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과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 모두 인권 문제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논란에 테니스 스타 팡솨이(彭師)의 ‘미투’ 이후 행방 논란까지 겹치며 인권 상황의 민낯을 드러냈다. 카타르는 월드컵 경기장 건설 등으로 2010년 이후 이주 노동자 65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각국의 비판을 받았다.

이들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도 내년 행사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치르면 국력을 과시할 수 있고, 정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년 3연임을 앞두고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 주요 단체들이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것도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경기장에서는 정치적 시위와 의사 표현이 금지되기에 스포츠 이외의 문제들은 무대의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일부 논란이 된다 해도 주요 경기들이 시작되면 대중들의 시선은 경기의 승패나 국가별 순위 등에 집중된다. 개최국의 부담이 덜한 이유다.

■민감해진 분위기는 변수로

다만 스포츠워싱이 반복되자 대중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을 인수한 사례가 그 중 하나다. EPL에 오일머니가 유입된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언론인 살해 등 인권 침해와 스포츠 불법 중계 논란이 불거진 사우디가 구단을 사들이자 유럽 인권단체들은 물론 EPL 19개 구단이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게리 호프만 EPL 회장은 사우디의 스포츠워싱 논란에 사임하기도 했다.

올림픽을 앞둔 중국도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코카콜라와 비자 등 올림픽 후원사들에게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촉구했으며, 미국과 영국은 외교적 보이콧(정부 사절단 파견 거부)을 고려 중이다. 중국은 2008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때도 인권 문제 개선을 공언했지만 인권 상황의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인권 개선에 대한 압박이 한 층 커진 배경이다.

일각에선 권위주의 국가들의 거듭된 스포츠워싱 시도가 ‘스트라이샌드 효과’(문제를 가리려다 오히려 관심을 일으키는 것)를 부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문제전문가인 데미안 필립스는 최근 유럽연합(EU) 전문매체 ‘EU옵저버’에 기고한 칼럼에서 “스포츠워싱이 역효과를 내는 사례는 여러 차례 목격돼왔다”라며 “사우디(뉴캐슬 인수)나 러시아(소치 동계올림픽)처럼 중국은 스포츠워싱이 결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워싱 문제를 개선하려면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환상을 벗고 민감한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적 표현을 일절 금하는 IOC 헌장 50조를 폐지하고 인권과 사회정의, 포용에 대한 메시지들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체육단체 스포츠·개발에 관한 국제플랫폼(sportanddev)은 최근 칼럼에서 “정치는 삶의 일부인 동시에 스포츠의 일부”라며 “둘을 분리하는 대신 더 큰 이익을 위해 스포츠의 정치적 힘을 활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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