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이 본 북의 의도
화성-12형 등 잇단 발사에
“북 무기 다양화·내부 통제에
미 양보 압박·한국 대선 겨냥
다양한 목적에 활용” 분석
“바이든 집권 1년간 북한 뒷전
미 대북 접근 묘책 없어” 우려
북한은 지난달 30일 서태평양의 미국 자치령인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시험발사함으로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간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에 안주해온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화성-12형 시험발사 의미와 전망 등을 묻는 경향신문의 서면 질의에 무기체계 다양화, 미국을 향한 압박, 외부 위기 고조를 통한 국내 불만 잠재우기 등 다양한 의도가 깔렸다고 말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는 더욱 진전된 핵탄두 운반 능력 확보,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내 권력 과시, 한국과 미국 정부의 양보 압박, 다가오는 남한 선거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년 동안 국내외 현안에 집중하느라 뒤로 밀린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도 분명히 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중국, 코로나19 등 더 큰 이슈에 대응하느라 김 위원장과 북한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김 위원장이 미국의 레이더망에 다시 들기 위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을 과시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를 규탄하면서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외교적 협상에 나설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은 북한을 움직이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대응은 충분한 강압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약하다”면서 “북한에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을 대화에 나오도록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김 위원장에게 심각한 압력을 가하는 것을 도울 의사가 거의 없다”면서 오는 3월 남한 대선이 있기 때문에 남한에 새 정권이 들어서고 한·미가 대북 접근법을 새로 가다듬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선임국장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와 별반 다름없는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고스 선임국장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투여할 묘책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과 진지하게 관여할 수 없고,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켰을 때 관여할 경우 마치 나쁜 행동에 보상하는 것처럼 비치는 모순적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에 ‘화염과 분노’를 내세워 조성했던 극도의 긴장 상태는 재현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선동적인 어휘를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대응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