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미국서 흑인 역사 교육 바뀐다

김혜리 기자

백인들의 ‘불편’을 이유로 교실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인종 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사 교육이 편파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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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다. 1926년 역사학자 카터 우드슨이 흑인들의 공헌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월 둘째주를 ‘흑인 역사의 주’로 지정한 것이 유래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2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래 해마다 기념됐던 ‘흑인 역사의 달’이 퇴보할 위기에 처했다. 인종 차별에 대한 교육을 제한하는 주들이 늘어나면서다.

미국 교육전문지 에듀케이션위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37개 주에서 입법이나 기타 조치 등의 형태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CRT)’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가 도입됐다.

CRT는 미국의 인종 차별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로 보는 학문적 접근이다. CRT 연구자들은 미국의 법, 교육, 사회제도가 백인과 비백인 간의 사회·경제·정치적 불평등을 초래해 왔다면서 지금도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CRT 교육을 반대하는 것은 대부분 백인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CRT 교육이 백인들로 하여금 피부색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인종이나 성별에 기반해 아이들을 갈라놓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교사들이 메이저리그 내야수인 재키 로빈슨(1919~1972)이 인종차별의 벽을 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르쳐도 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들이 금지된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논리로 흑인 민권 운동가 말콤 엑스(1925~1965)에 대해 가르치되 인종 차별을 비판한 그의 연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플로리다 주의회 상원 교육위원회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공립학교에서 과거 백인들의 인종 차별 행위에 대해 백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의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는 학생들을 “갈라놓을 위험이 있는” 수업이 진행될 경우 학부모들이 직접 제보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개설했다. 공화당 소속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최근 대학과 학교에서 인종 학살에 대한 특정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사우스다코타주는 1890년 미군이 라코타족을 학살한 곳이다.

일부 교사들은 인종차별이나 유색인종의 역사를 언급할 경우 주 당국에 의해 처벌을 받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지아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가르치는 교사 트레이시 린 낸스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교사들이 자기 검열에 들어갔다”면서 “이들은 수업 내용을 바꾸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니엘 조셉 텍사스대 교수는 CNN 기고문에서 “‘흑인 역사의 달’은 아이들이 미국 역사를 자부심과 수치를 모두 갖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막으려는 편협한 인식에 저항하는 기회”라면서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상상하려는 노력에 대한 백래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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