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압수수색 파문에 긴장한 미국…트럼프 측 “정치적 수사”, 민주당 “법과 진실 중요”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가 압수수색을 당한 지 하루 뒤인 9일(현지시간) 밤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 도착해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가 압수수색을 당한 지 하루 뒤인 9일(현지시간) 밤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 도착해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사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이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전직 대통령 압수수색이 일으킨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2024년 대선 재출마를 벼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돼 형사 처벌을 받으면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공화당은 조 바이든 정부가 수사권을 정치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일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내전’을 외치고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 크리스티나 보브는 9일(현지시간) 극우 성향 매체 OAN 등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압수수색을 참관했다면서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대통령기록물법 등 기밀 자료 취급에 관한 규정 위반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은 지난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무단으로 갖고 나간 15상자 분량의 자료를 돌려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서한들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후 NARA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기록물을 상습적으로 훼손하고 퇴임하면서 무단 반출한 자료를 모두 반납하지 않는 등 대통령기록물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면서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했다. 따라서 FBI는 압수수색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 거주지에서 반납하지 않은 추가 자료와 반출해선 안되는 기밀 자료 등의 확보를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사관들이 자신의 금고까지 열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 문건 제출을 거부한 것을 계기로 1978년 제정됐으며, 대통령 재임 당시 모든 자료는 국가에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출한 자료 가운데 국가 기밀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다른 관련 법률에도 저촉될 수 있다.

FBI와 법무부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는 물론 이유에 관해 확인을 거부했다. 수사 당국이 뽑아 든 칼의 파괴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해서 반드시 형사 기소된다거나 유죄 판결을 받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이 부른 정치적 파장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e메일에서 “그들은 공화당과 나를 또 한차례 멈춰 세우려 시도하고 있다”면서 “무법과 정치적 박해, 마녀사냥은 반드시 폭로되고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지지층 결집의 계기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예상됐던 그의 2024년 대선 출마 선언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다시 부상했다.

공화당도 엄호에 나섰다. 캐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법무부는 용인할 수 없는 정치화 상태에 도달했다”라고 비난했다. 법무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의회 폭동을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했고, 다음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이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NBC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팟캐스트 진행자 등 영향력이 큰 네티즌들이 무장을 촉구하는 ‘발사준비완료(lock and load)’나 ‘내전’ 등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마러라고 리조트 부근에 일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결하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법과 진실’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면서 “대통령은 보고를 받지 않았고 알지 못했다. 백악관의 누구도 사전 통보를 받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실을 들어 공화당의 정치적 수사 주장을 일축하면서 “사실과 진실, 사실과 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유동적이다. 수사 당국이 이번 압수수색에서 중대한 범죄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 건’을 확보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건 외에도 다양한 사안들로 연방정부는 물론이고 뉴욕주·조지아주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일가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축소하면서도 은행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는 자산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 뉴욕 검찰에 출두하면서 본인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인종차별론자인 뉴욕주 검찰총장을 만나게 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마녀사냥의 일환”이라고 썼다.

반면 수사 당국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거나 혐의가 미미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트럼프 정부 시절 백악관 전략공보국장을 지낸 얼리사 페라 그리핀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니고 압수수색이 과도한 것으로 드러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득이 될 것이라면서 이 경우 FBI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2024년 대선 승리 열쇠를 건넨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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