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 목소리’···뷔페의 강렬함에 빠져든다

이영경 기자

개막 앞둔 ‘베르나르 뷔페전’ 예술의 전당 현장

4m 너비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 그림 강렬

초기작부터 죽기 직전 그림까지

“뷔페 그림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베르나르 뷔페의 ‘단테의 지옥’이 설치되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회고전은 오는 26일부터 열린다. 김창길기자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베르나르 뷔페의 ‘단테의 지옥’이 설치되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회고전은 오는 26일부터 열린다. 김창길기자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베르나르 뷔페의 ‘잔다르크-목소리’가 설치되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회고전은 오는 26일부터 열린다. 이영경 기자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베르나르 뷔페의 ‘잔다르크-목소리’가 설치되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회고전은 오는 26일부터 열린다. 이영경 기자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가로 4m, 세로 2.5m의 대형 유화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 위에 붉은색 레이저가 가로선을 그었다. 그림이 벽에 수평에 맞게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함께 지옥에 떨어진 이의 머리를 잡고 돌로 내리치려는 사람과 손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람의 배와 가슴에 붉은 실선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대각선 방향의 벽엔 머리가 없는 중세 기사의 갑옷에서 화염과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바닥엔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쓰러진 듯 앉아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4m 폭의 유화 ‘잔다르크-목소리’다. 벽을 가득 채우는 큰 사이즈와 강렬한 그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오는 26일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의 두번째 대규모 회고전 개막을 앞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은 막 박스에서 풀려나와 빛을 본 뷔페의 그림들과 이를 설치하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캔버스나 물감 같은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여기 보시면 캔버스 두 개를 이어붙인 흔적이 있습니다.”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뷔페가 19살에 그린 그림이에요. 여기 보면 사인도 뷔페의 잘 알려진 사인과 다르죠.” 그림엔 두 캔버스를 이어 붙여 표면이 울퉁불퉁한 곳이 보였다. 뷔페는 물감으로 정성껏 그 위를 칠했지만 표면의 굴곡까진 덮지 못했다. 그림엔 직선을 길쭉하게 그어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뷔페 특유의 서명과 달리, 19살 청년이 그려넣은 평범한 서명이 적혀 있었다.

2019년 뷔페의 국내 첫번째 회고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두번째 회고전에는 뷔페의 작품 총 120여점이 선보인다. 레비 이사장은 “첫번째 회고전이 작품이 그려진 시간 순서대로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선 뷔페가 일생동안 다뤄온 주요 주제별로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단 1점을 제외하고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첫 전시와 또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전시 들머리엔 뷔페가 스무살 무렵 그린 정물화 세 점을 시작으로 뷔페가 일상을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 등이 전시된다. 이어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광녀’, ‘빨간 머리’ 등 인물화와 뷔페의 자화상이 자리잡았다. 젊은 시절 뷔페는 미술에 천재적 소질이 있는 잘 생긴 청년이었다. 하지만 뷔페의 자화상은 걍팍하고 날카롭고 불안해 보인다. 레비 이사장은 “뷔페가 스스로를 이렇게 바라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뷔페가 즐겨 그렸던 광대 그림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다. 푸른 배경에 붉은 코와 우울한 눈동자를 한 광대 그림이 눈길을 잡아끈다.

뷔페는 서커스에 등장하는 동물과 곡예사들도 그렸다. 공중그네를 타는 두 곡예사를 그린 그림에선곡예라는 오락 행위와 어울리지 않는 힘없는 곡예사들의 몸짓과 텅 빈 눈빛이 대비돼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주할 악기 옆에 서 있는 광대의 표정과 눈빛은 슬프기 그지없다. 뷔페의 인물화를 직접 보면 특유의 공허, 슬픔, 불안이 진하게 느껴진다.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는 섹션별로 변신하듯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린 풍경화를 전시한 섹션에선 뷔페의 눈에 비친 파리, 뉴욕, 베니스 등의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파리를 그린 그림에선 에펠탑, 르누아르의 그림에도 나오는 무도회장 물랭 드 라 갈레트 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뷔페의 풍경화를 보면 ‘에펠탑이구나, 생자크 타워구나’ 하면서 장소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동시에 이게 뷔페의 그림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어요. 두 가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린 점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관계자들이 작품들을 걸고 있다. 김창길기자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관계자들이 작품들을 걸고 있다. 김창길기자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뷔페가 죽기 직전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이 뷔페가 죽기 직전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풍경화들이 전시된 방 가운데 강렬한 해골 그림이 놓였다. 마지막 섹션에 전시될 그림이 잠시 놓여진 것이다. 1999라는 숫자가 선명한 그림은 파킨슨병에 걸린 뷔페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다. 해골과 까마귀의 형상은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를 그린다. 레비 이사장은 “죽음만 다룬 건 아니다. 배 속을 보면 태아가 있는데, 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뷔페가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 드러난다. 뷔페에게는 삶은 곧 그림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문학·종교·신화를 다룬 섹션이 하이라이트다. 4m가 넘는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이 강렬함을 내뿜는다. 옆에는 3m 폭의 ‘돈키호테-돈키호테와 샤프롱들’이 걸렸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주요 장면 10장(석판화)을 그린 작품, 장 콕토의 <인간의 목소리>에 그린 삽화(동판화)도 볼 수 있다.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장면을 그린 석판화가 설치되고 있다. 김창길기자

오는 26일부터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장면을 그린 석판화가 설치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전시는 뷔페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 아나벨 뷔페를 그린 그림들을 거쳐 파킨슨병에 걸려 1999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린 그림들로 막을 내린다. 셀비 이사장이 전시장 끝에서 말했다.

“뷔페의 그림은 도록으로 감상할 때와 실제로 감상할 때 큰 차이가 있어요. 직접 보면 그 강렬함에 충격을 느낄 수 있죠. 뷔페의 그림에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대성도 갖추고 있죠. 실제로 그림을 보고 직접 느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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