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소년 샤오핑’

- 그 시절 영화는 삶의 전부였다 -

지금 30대 후반이 된 한 사내. 그는 어린 시절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완행버스조차 오기를 싫어하던 시골에 살다보니 변변한 극장 한 번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학교에서 단체관람이라도 할 시에는 발 냄새, 땀 냄새에 골이 ‘띵’했지만 코를 막아가며 허연 광목에 비쳐지는 배우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했다. 신영균, 허장강, 최무룡이 나오는 반공영화가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나면 전쟁놀이를 흉내 내며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되곤 했다.

[영화리뷰] ‘영화소년 샤오핑’

소년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두세 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이동 노천극장에서 상영하는 쿵푸영화. 마을 공터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광목을 쭉 둘러치고 밤에 되면 영화를 상영했다. 가난했던 소년은 영화를 공짜로 보기 위해 낮에 풀 통을 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포스터를 담벼락에 붙여야만 했다. 여하튼 낮에 발이 퉁퉁 불 정도로 뛰어다닌 덕분에 영화가 상영하기 전에는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의자도 없고, 방석도 없었다. 대충 땅을 고르고 비닐부대를 깔고 앉았지만 그냥 좋았다. ‘외팔이 왕우’ ‘천룡 13왕자’ 등을 보고 온 날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의의 검을 뽑아든 주인공이 밤새도록 천장 신문벽지 위를 날아다녔다.

‘영화소년 샤오핑’(電影往事)을 보면 그 옛날 200원을 내고 단체관람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문화혁명 이후의 한 시골마을. 협동공장에서 아나운서 일을 하던 쉬에화(지앙 이홍)는 위험한 사랑에 빠져 야외극장에서 딸아이를 낳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스크린과 함께 한 링링(관 샤이아오통)은 여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어느 날 짓궂은 샤오핑(왕 젱지아)라는 아이가 전학을 온다. 둘은 함께 놀고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갖게 된다.

[영화리뷰] ‘영화소년 샤오핑’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어릴 적 영화배우를 꿈꾸던 새침데기였던 링링. 앞니 빠진 이빨과 훌쩍거리던 콧물로 기억되던 샤오핑. 둘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시간은 너무도 훌쩍 지나 지금 영화광이 되어 만났다. 긴 시간의 굴곡을 휘돌아 서로 마주 서 있지만 상대를 알지 못한다. 너무도 그립고 행복했던 그 시절. 이젠 추억으로만 가슴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중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인 만큼 지나간 중국영화들이 잠깐씩 스크린으로 되살아난다. 링링의 우상이었던 쩌우쉬엔 주연의 ‘길거리의 천사’(1937)와 샤오핑이 망원경으로 보면서 정신을 팔았던 ‘철도 유격대’(1956), 어린 링링이 동경하는 배우로 노래하는 판똥즈가 등장하는 ‘빛나는 붉은 별’(1974) 등이 중국인들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나 ‘빨간 마후라’를 떠올리는 것처럼. 18일 개봉.

<미디어칸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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