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같이 갑시다” 반강제 ‘임의동행’ 불법

대법원은 6일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거나 경찰서 등에 간 뒤에 피의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 임의로 경찰서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임의동행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경찰서로 같이 갑시다”  반강제  ‘임의동행’ 불법

대법원이 경찰의 임의동행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손지열 대법관)는 6일 경찰의 임의동행 요구에 응해 조사를 받다 긴급체포된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주한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박씨에 대한 경찰의 동행이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해진 불법 강제연행에 해당하고, 긴급체포 또한 불법이어서 도주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의동행은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었음이 객관적 사정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해 적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현재도 피의자 등이 수사기관의 임의동행 요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경찰의 ‘같이 가자’는 요구를 피의자들이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임의동행은 체포영장 없이도 피의자 등의 신병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은 수상한 행동을 하거나 범죄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고, 이 질문이 당사자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에 방해가 될 때에는 부근 경찰서나 지구대로 동행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경찰의 관행적 임의동행은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자발적 동행이 아니라면 적법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우므로 충분한 증거수집 등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현행범이나 뚜렷한 혐의가 있다면 영장없이 긴급체포도 가능하지만 이는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면 석방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으로선 다소 부담스러운 방법이다.

경찰은 2004년 9월 현금·수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중 훔친 수표를 사용한 박씨 누나로부터 ‘동생이 수표를 줬다’는 진술을 받아낸 뒤 경찰관 4명을 보내 10시간 잠복 끝에 새벽에 귀가하던 박씨를 연행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경찰은 당시 수표 절도 관련혐의를 부인하던 박씨에게 “경찰서에 가서 확인해보고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그냥 돌아가도 좋다”고만 얘기했을 뿐 “동행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알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박씨가 경찰서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관 1명이 따라와 감시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 임의동행된 이후 임의로 퇴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조사과정에서 박씨의 누나가 거짓진술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박씨의 누나에게만 점유이탈물 횡령 혐의로 징역 6월이 선고됐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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