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춤에 혼이 담기지 않으면 풍선이야”

호남살풀이춤

호남살풀이춤

너무 예쁜 게 흠이었다. ‘호남살풀이춤’ 인간문화재 최선(72·본명 최정철)은 오빠부대의 원조다. 곱게 생긴 외모에 나비처럼 가볍게 살랑살랑 팔을 나부끼며 무대를 누비는 최선의 춤 현장에는 늘 여성팬들이 줄을 이었다. 지역공연을 따라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최선의 집까지 발길을 잇는 여성들도 있었다. 스토커였다.

# 한국전쟁이 빼앗은 행복

최정철은 1935년 전북 전주에서 아버지 최한필과 어머니 김옥주의 4남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셋째 아들인데 현재 누나 2명과 아우 1명이 살아있다.

아버지는 전북 임실에서 여관업을 했다. 잘 살았다. 그런데 6·25가 최정철의 집안을 통째로 뒤흔들어놓았다. 여관은 망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두 아들은 인민군에 학살 당했다.

“큰 형은 대한청년연맹 부장이었고 작은 형은 경찰이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무렵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저는 어려운 생활을 했죠. 저요, 고생 징글징글하게 했어요.”

춤은 10살에 시작했다. 1945년 해방 후 전주에서 최승희의 제자 김미화가 그의 발을 떼게 해주었다.

45년 김제군 금구초등학교 3학년 때 학예회를 했는데 여학생 2명, 남학생 2명이 뽑혔다. 최정철은 그중 한 명. 학예회담당인 교생은 한국춤을 가르치는 게 아니고 유희성 동작을 지도했다.

‘방아방아, 콩콩 찧는 물방아야…’ 같은 동요에 맞춰 춤추는데 ‘정철이 제일 잘한다’고 칭찬 받았다. 어린이는 칭찬 받는 게 좋아 율동이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시골에 극장이 어딨어요? 악극단이 오면 농협창고에 가설무대를 짓고 공연했죠. 신파극도 공연하고 서커스단도 왔는데, 집에선 어린애가 가면 안된다고 막았어요. 결국 몰래 집을 나와 공연장 담을 넘다 발목을 삐기도 했고… 5학년 2학기 때 전주 완선초등학교로 전학 가 김미화 무용연구소에서 13살까지 춤을 배웠습니다.”

# ‘착할 선’의 최선, 호남살풀이춤을 만들다

남중 2학년 때 6·25가 터졌다. 김미화는 부산으로 피란가고 전주에 남은 무용연구생들은 2층 비어있는 학원에 모여 연습을 계속했다. 그중 가장 어린 최정철은 당시 전주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치던 기녀 출신 선생 추원에게 배웠다. 특히 그때 배운 수건춤은 ‘호남살풀이춤’의 바탕이 됐다.

“전주국악원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발 내리고 수건춤을 추는데 추원 선생이 돗자리를 벗어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춤음악이 없어 추원이 장구치고 구음하며 가르쳤죠. 그 춤을 ‘동초 수건춤’이라 했어요. ‘동초’는 동기(쪽찌지 않은 어린 기생)와 초립동의 합성어인데, 조그만 수건이나 부채를 들고 추었어요. 수건은 입으로 물거나 손으로 뿌리며 추기도 했죠.”

6·25 직후 공연무대에 섰다. 케이피케이, 케이에이치 등 군인악극단과 무궁화 등 악극단 소속으로 전국 무대에서 춤을 추었다. 지방공연은 사연도 많다. 비가 많이 오면 공연이 취소됐다. 여관에선 30여명의 악극단원들이 다음 공연지역으로 갈 때까지 죽치는데, 공연을 못했으니 숙박비가 있을 리 만무. 여관 주인은 수금을 위해 악극단의 다음 공연 장소까지 따라가곤 했다.

“우리는 악착같이 뒤쫓는 여관 주인을 ‘호열자(열병)가 따라온다’고 했어요. 당시 출연료를 받지 못한 배우들은 다른 악극단으로 떠나곤 했는데, 그 배우 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 우릴 따라온 여관 주인들이 대신 무대에 섰답니다. 정말 웃기는 일이죠. 당시 황해·조미령·이빈화 등이 잘 나가던 배우죠. 저도 출연료는커녕 매일 굶다 결국 집으로 도망갔죠. 어머니께선 무척 반가워하시더군요.”

‘여자 같은 남자’로 불리던 최선. 예명은 단체 공연 다닐 때 연극인 황철이 지어주었다. ‘착할 선(善)을 써라. 최선이라 지으면 그 이름이 널리 퍼지고 유명해질 이름’이라고 했다. 19세부터 ‘최선’이었다.

# 19세 예쁜 남자는 오빠부대 원조

추원이 떠난 6·25 전쟁 직후 전주에서 은방초(본명 은종협·현재 미국 거주)를 만나면서 최선의 춤사랑은 점점 깊어만 갔다.

“남중 졸업 후 고교 진학을 못하고 춤만 추고 있었죠. 그때 거리에서 6살 위 은방초형을 만났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춤춘다기에 매일 붙어다녔습니다. 그전에는 남자선배들과 어울리며 2층 연습실에서 축음기를 틀고 춤추곤 했는데, 그들이 흩어져 허전할 때 방초형이 나타난 겁니다.”

전주에 은방초의 형수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빌려 연구소로 썼다. 전주 최초의 무용학원인 셈. 당시 영화 ‘자유부인’의 영향으로 가정부인들이 10명씩 춤 배우러 몰려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은방초와 최정철은 자유부인이 되고픈 아줌마들을 가르치느라 바빴지만, 시간만 나면 전주 시내를 손잡고 누볐다. 예쁘게 생긴 남자 두 명이 시내에 뜨면 사람들은 ‘여자냐 남자냐’ 궁금해하며 두 사람의 뒤를 따르곤 했다. 내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돈버는 일보다 춤추는 게 좋아 열심히 가르쳤다.

3년 후 은방초가 서울 남산 소재 서라벌 예대(1기생)에 진학하느라 전주를 떠났다. 최선은 어린 데다 돈도 없어 서울에 따라가지 못했다.

춤추며 전주시내를 누비던 18세 최선

춤추며 전주시내를 누비던 18세 최선

“방초형을 만나러 가끔 서울에 갔죠. 은방초 스승인 정인방 선생도 만났고요. 당시 정선생님은 필동 고아원을 비롯, 공간을 전전하며 무용연구소를 열었는데 저는 서울 갈 때마다 배웠어요. 또 정선생을 전주 시내 여관에 모셔와 1주일에서 1개월씩 독선생으로 배우기도 했죠.”

돈이 없어 정인방에게 교습비를 건네지 못했지만 춤을 배웠다. 모두 어려운 시절. 굶주려가며 춤추었다. ‘학춤’ ‘무당춤(대감놀이)’ ‘심불노’ ‘살풀이춤’ ‘행상’(엿장수가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춤) 등을 배우고 공연도 했다.

20살. 첫 춤발표회를 전주 국립극장에서 가졌다. ‘호남살풀이춤’ ‘승무’ ‘논개’ ‘꽃의 정’ 등 각종 춤을 추었다. 그때부터 최선에게 오빠부대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인기 짱. 30대까지 거의 매년 개인춤 공연을 가졌다.

# 혼이 없는 춤은 떠다니는 풍선

“명동 국립극장에서 ‘논개’ 공연 때 왜장인 제가 논개역의 이애주와 꼭 껴안고 진주 남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정말 멋지게 떨어졌죠. 우리는 찰떡호흡이어서 잘 맞았어요. 하하하….”

최선은 ‘최일류’만 고집했다. 명동 국립극장 시절 조명은 당대 최고인 차기봉·이우영이 맡고, 음악은 지영희·지광희·성금련·한상묵·신쾌동 등 명인들이 연주를 담당했다. 무용가들 중 강선영·한영숙·정인방·송범·김진걸·이매방·이인범(발레)·조영자 등 당대의 스타들을 초빙해 교습과 공연을 펼쳤다. 김백봉·임성남·김천흥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무용가들을 초빙했다. 지역에선 당대의 스타들을 초청하는 예가 없는데, 최선은 전주에서 황무지를 개척했다.

“전주를 찾아주신 선생님들께 출연료나 강의료를 많이 못 드리고 기차표만 사드렸어요. 서울로 되돌아가시는 그분들 뒷모습을 보며 기차역에서 울곤 했습니다. 배웅하고 연구소로 돌아가면 남는 게 딱 두 가지죠. 장구와 빚! 빚쟁이에게 시달려 장구통 붙잡고 울고, 집세 내라 조르는 집주인 닦달에 못 견뎌도 춤 때문에 살았습니다.”

물자가 귀해 무용 의상 마련도 힘든 시기였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구호물자보따리를 뒤져 스팡클옷을 저렴하게 구입한 후 밤새 스팡클을 떼어내 의상에 붙였다. 족두리 등 소품도 직접 만들었다. 그 습관은 지금도 이어진다.

30대 후반 서울 홍릉에서 무용연구소를 1년여 운영했다. 은방초는 필동에서 무용연구소를 하고 있었다. 그때 최선은 은방초·한상묵(예명 한유성)과 삼총사로 지냈다. 사람들은 ‘세 자매’라 불렀다. 한유성은 장구와 가야금 연주의 최고수였다. 세 자매는 홍릉과 필동연구소에서 반되들이 소주를 들여놓고 춤을 논했다.

그러나 다시 전주로 내려갔다. 제자들이 졸랐다. 고3 수험생 이길주는 스승의 손을 잡고 경희대 무용과에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 길을 가다 최선에게 픽업돼 무용에 입문한 채상묵도 최선을 사사하다 서라벌예대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갔다.

그는 제자들에게 항상 ‘혼의 춤을 추라’고 강조한다. 혼이 담겨 있지 않은 춤은 고무풍선이라고 한다. “고무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춤은 필요없습니다. 또 정신통일과 예의범절을 중요시하죠. 우리 학원에 처음 오는 학생들은 누구나 청소부터 해야 합니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공간 속에서 혼이 담긴 춤을 추어야 바른 춤을 출 수 있는 겁니다.”

결혼은 36세에 했다. 수많은 여자 팬들이 결혼하자고 따라다녔지만 일절 거들떠보지 않았다. 춤에 미쳐있는데 무슨 여자가 필요했겠는가.

“색싯감 사진을 보니 참하고 예쁘고, 장녀라 살림도 잘 한다고 했어요. 저는 춤추는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었거든요. 가정적인 사람을 원했는데 바로 집사람이 제가 원하는 상대였어요. 처가에선 노총각이라고 반대했죠.”

부인 김숙자씨(64)는 ‘춤을 가르치는 노총각이니 분명 총각은 아닐 것이다. 아이도 있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최선을 만나본 후 생각을 바꾸었다.

최선은 2남1녀를 낳았다. 큰 아들 최석훈(35)은 대전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주자 겸 배재대에 출강하고 며느리 조혜련도 피아니스트 겸 배재대 강사이다. 둘째 아들 최지훈(33)은 극단 작은신화 배우. 딸 최지원은 4살 때 무용을 배웠고 호남살풀이 이수자로 활동 중이다.

최선은 79년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아내의 손을 잡고 참가했던 일을 가장 잊지 못한다. 자신이 안무한 ‘가갯골의 전설’로 최우수상 없는 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3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준비했는데, 최우수상을 받지 못하자 속상해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대학 입학금이 30만원선이었고, 3000만원은 집 몇 채 값이었다. “첫 무용발표회 때도 떨지 않았는데, 대한민국무용제에선 너무 긴장했어요. 집사람 손을 꼭 잡고 ‘열심히 추자’ 다짐했었죠.”

이젠 모두 옛 일이다. 요즘은 힘에 부쳐 ‘큰 일’을 자제한다. 하루종일 호남살풀이춤 전수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매주 셋째주 토요일에는 새벽 6시40분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 제자 고선아씨의 학원에서 호남살풀이춤을 가르친다. 공연도 자주 한다. 지난 6월30일 석촌 서울 놀이마당공연에 이어 9월9일 부산에서 열리는 ‘8도 살풀이축제’, 9월13일 전주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영남지역과 달리 춤기운이 쇠해진 호남의 한국춤을 지키고 있다.

“다시 그 시절로 가라면 가야지요. 스승께 장구채로 맞아가며 춤을 배웠지만, 선배들과 몰려다니며 춤추던 기억…, 너무 재미있었어요. 굶어죽어도 무대에서 춤추다 쓰러지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정신은 변함없어요.”

무대에서 죽는 게 바람이다. 무대에서 춤춘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끊어지는 숨. 그것만이 ‘예쁜 남자’의 소원이다.

▲ 최선 약력

[춤과 그들]최선 “춤에 혼이 담기지 않으면 풍선이야”

1935년 최한필과 김옥주의 셋째 아들로 전주에서 출생
1996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지정
1980년 대만·일본 무용협회 초청 합동 친선공연
1985년 미국 순회공연
1986년 프랑스 세계민속무용공연에 한국 대표로 참가
1988년스위스·독일·이탈리아·프랑스 순회공연(문공부 후원)
1991년 러시아 사할린 한국동포 위문공연(문화부 후원)
1992년 동남아 순회공연(태국 국립예술대 총장 초청공연)
1998년 인간문화재 최선 춤 열린무용 대공연
1995년 최선 춤 50주년 대공연
2000년 최선 춤 대공연
2001년 캐나다 포크로라마 민속제전 초청공연
2004년 최선 춤 60년 대공연-한민족의 혼
2006년 최선 춤-목련꽃 피고 지고

〈수상〉

전라북도 문화상(1969), 한국교육무용총연합회 작품지도상(1971), 중앙대 무용공로상·조선대 안무상(1977), 전라북도 지사 감사장(1980), 전주시민 문화상(1982), 개천예술제 특상부문 대상(1984), 원광대 총장상(1990) 등

〈유인화 선임기자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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