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홈페이지 ‘뉴스룸’ 메뉴에 가면 ‘사진뉴스’ 항목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사진은 지난해 12월 12일 ‘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 방문’이 마지막이다. 넉 달 넘게 두문불출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총선 사전투표도 윤석열 대통령과 따로, 비공개로 했다. 4·10 총선에 미칠 ‘김건희 리스크’를 축소하려는 대통령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총선이 끝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김 여사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곳곳에서 존재감이 드러난다.
지난 17일 새벽 TV조선과 YTN이 잇따라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유력 검토’ 설을 쏘아올렸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공직 인사를 두고 애드벌룬을 띄우다가 여론 봐가며 접는 일이야 흔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공식’ 라인이 ‘공식’ 부인했음에도 대통령실 일부 관계자들이 ‘검토한 건 사실’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인사·홍보 담당 라인에 있지도 않은 이들이다. ‘비선’ 개입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박영선 전 장관은 MBC 기자 시절부터 김 여사와 알고 지냈으며 ‘비공식 라인’ 관계자들은 김 여사와 가깝거나 인연이 있다고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공직기강 문란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인사조치는 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법률수석실(가칭)로 바꿔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심을 청취하는 조직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실제 이유가 그렇다면, 폐지하기로 한 시민사회수석실을 없애지 말고 개편하면 될 일이다.
총선 전 거론조차 없던 법률수석을 총선 후 신설하겠다는 건 여소야대 정국을 의식한 ‘방어용’으로 비친다. 윤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김 여사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디올 백 의혹 특검’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 같다. 정작 시급한 특별감찰관·제2부속실 설치는 뒷전으로 미룬 채 세금으로 ‘용산 로펌’을 운영하겠다는 건가.
김 여사에게 디올 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됐다. 스토킹 혐의가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불안과 공포감을 느껴야 한다. 김 여사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필요하면 (조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판단하기는 성급하다”고 말했다. 법 집행에는 공정·균형·형평이 요구된다. 범죄 성립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입건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피고발인을 입건했으면 피해자 조사도 해야 옳다.
총선 이후 검찰 안팎에선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교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송 지검장이 올해 초 김 여사를 소환조사하려다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다는 설이 파다한 터다. 대한민국 국민 중 불소추 특권을 갖는 이는 단 한 명, 현직 대통령 뿐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에 없는 특권을 배우자에게 선물하려 한다.
“최근 윤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관저 정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중앙일보). 딱 한 줄이지만, 함의가 작지 않다. 비선 의혹, 관저 정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임기 말, 이런 표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씨를 수사해 탄핵으로 이끈 국정농단 특검팀의 주역이었다. 이런 말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이 22일 공식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배우자 카르멘-제오르제타 여사와 함께 입국했다. 김 여사도 정상외교 관례에 따라 공개 석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공식 활동 복귀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제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할 시점이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3년간 국민의힘 108석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오산이다. 22대 총선은 끝났고 23대 총선은 윤 대통령 퇴임 후 치러진다. 국정수행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인 23%(한국갤럽)까지 떨어진 터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앞두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는 회담이다. ‘아내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수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천명이 필요하다. 그 한마디야말로 총선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국민은 ‘김 여사의, 김 여사에 의한, 김 여사를 위한’ 권력 사유화를 용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