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87년 여름, 이 앨범이 발표되었을 때 음악계 종사자들은 일대 경이의 시선을 보낸다. 앨범의 주인이 작사·작곡뿐 아니라 ‘편곡’까지 혼자 해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여기엔 훗날 ‘발라드의 제왕’이 될 신승훈도 끼어 있었다. “아,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하다니….”

[커버스토리]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멜로디와 가사를 쓰는 것을 넘어 그 평면적인 악보를 우리가 듣는 완성된 곡으로 만드는 작업인 편곡은 모든 과정이 분업화되어 있던 당시 관습으로는 뮤지션들에게 넘지 못할 벽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재하의 이 앨범은 국내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음악가가 꿈꾸는 음악적 자주(自主)의 완전 실현을 일궈낸 기념비적 성과물이다.

음악가의 상상력을 앨범이라는 실체로 온전히 꾸려내는 작업은 아무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 클래식의 화성학을 터득하고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관할할 수 있는 유재하의 비범한 재능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에 이미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만이 속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활약했다. 이런 인연으로 조용필은 유재하가 쓴 ‘사랑하기 때문에’를 취입하게 된다.

그는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첼로·기타 등 대다수의 악기를 마스터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앨범 중간에 연주곡으로 수록한 ‘미뉴에트’ 한 곡만으로 그의 독자적 음악영토와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 품에’ ‘가리워진 길’ ‘지난 날’ 등 수록곡 전반에 다양하고 까다로운 화성이 구사되고 곳곳에 지금도 놀랄 음악적 장치와 아이디어들이 숨어 있다. 마치 보물찾기의 유혹을 자극한다.

음악은 모든 게 달랐다. 멜로디는 재래식 방식과 완전히 유리되었고, 가요의 히트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통속성과도 작별했다. 처음 듣는 선율 패턴을 전하는 유재하의 노래도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 관계자들마저도 “가수의 노래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곡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것이 국내 대중음악의 새로운 시작이자 도약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이를 “한국의 대중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고 표현했다.

유재하 1집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 1집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가 음악계에 남긴 자취는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려 유희열, 조규찬, 심현보 등 영향을 받은 음악 인재들이 속출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자연스럽게 ‘유재하 사단’이라는 수식도 등장했다. 상기한 인물들은 물론 유영석, 한동준, 김광진, 김동률 등 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그의 음악을 숭배했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이름 뒤에 사단이란 거창한 말이 붙은 사람은 신중현과 유재하밖에 없을 것이다.

유재하와 함께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멜로디와 모양새의 대중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앨범이 나온 지 3개월이 채 안된 1987년 11월1일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그의 불우를 대가로 우리는 과분한 영광을 얻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에게도 역사의 보상이 축적되었다. 아니, 사망한 날짜에 벌써 그는 대중음악의 전설로 비상했다. 유재하와의 관계를 숙명으로 여겼다는 신승훈은 정확히 3년 뒤인 1990년 11월1일에 데뷔한다.

〈임진모|음악평론가 www.izm.co.kr〉

▲ 유재하 프로필

[커버스토리]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유재하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작곡과에서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진영에는 유재하처럼 이론과 실기를 두루 겸비한 뮤지션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재능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의 악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던 그는 대학 시절 당대 최고의 밴드라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각광을 받았고, 이후 김현식의 백밴드인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거쳐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을 하게 된다. 솔로 앨범을 제작하는 동안에도 그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곡을 제공했는데 그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같은 노래들이다. 정규 음악교육을 거치며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클래식의 화성을 이용한 그의 작곡법은 이후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런 특성은 자신의 독집 앨범에서 극대화된다. 앨범 안에서 그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을 혼자 해냈으며 거의 모든 악기들의 세션까지도 혼자 담당했다. 클래식과 재즈에 기반한 감성적이며 투명한 음악은 그의 요절과 맞물리며 어떤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가 사망한 날은 1987년 11월1일이었고, 정확히 3년 후 김현식도 같은 날짜에 세상을 뜬다.)

그의 단 한 장의 앨범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뮤지션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사망 후 만들어진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배출된 뮤지션들을 빼고는 한국대중음악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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