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다즐링 주식회사

-삶의 의미를 못 깨우친 잡지의 명품 광고 같은-

구독하지는 않더라도 미용실 등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외국계 패션지를 본 적이 있으신지. 기사 못지않게 눈에 띄는 건 잡지 전반부에 빼곡하게 들어찬 명품 광고다. 최고 실력의 세계적 사진 작가들이 멋진 배우, 모델이 명품을 입거나 손에 든 사진을 찍어 게재한다. 황홀하게 아름다워 몇번이고 다시 훑어볼 때가 많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 광고 사진은 구매욕을 불러일으킬지언정,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는 인색하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명품 광고 사진 같은 영화다.

사업가 같은 옷차림을 한 빌 머레이가 헐레벌떡 역으로 뛰어들어오지만 결국 기차를 놓친다. 웨스 앤더슨의 전작 ‘로열 테넌바움’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생활’에 출연했던 이 무표정한 배우가 다즐링 주식회사란 이름의 열차에 오르지 못한 건 상징적이다. 대신 등장한 이는 프랜시스(오웬 윌슨), 피터(애드리언 브로디), 잭(제이슨 슈왈츠먼) 삼형제다. 프랜시스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뻔한 뒤 삶의 의미를 찾고 있고, 피터는 임신한 아내와의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잭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전화 사서함을 수시로 엿듣는다. 한눈에도 친해 보이지 않는 삼형제는 아버지의 유품이 들어있는 여행가방 11개를 들고 인도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참다운 나’를 찾자는 맏형 프랜시스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지만, 나머지 형제들의 표정은 탐탁지 않다. 티격태격하던 형제들은 급기야 열차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다즐링 주식회사’는 영화 외적인 이유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가 공개되기 직전 오웬 윌슨이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오웬 윌슨은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채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버지가 남긴 각기 다른 모양새의 황토색 가방 11개는 프랑스 명품 루이뷔통의 협찬으로 제작됐다. 엔딩 타이틀에서는 루이뷔통과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이름이 여느 스태프, 배우 못지않게 중요하게 언급된다. 인도의 이국적으로 원색적인 기차, 의상, 피부 색깔 등과 어울린 가방은 영화 내내 탐스럽게 전시된다. ‘아버지의 유산을 지닌 채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정성스레 제작된 소품이다.

매력적인 여승무원이 건네는 스위트 라임, 상자에 담겨 판매되는 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기차 등 인도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설정이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인도=신비한 나라’의 고정관념을 강요하지 않아,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서는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가 삶의 통렬한 깨달음을 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로열 테넌바움’ 등에서 따뜻하면서도 독특한 감수성을 선보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 감독으로 성장할 뻔했던 웨스 앤더슨은 의미가 아니라 스타일에 천착하며 길을 잃은 느낌이다. 영화 상영 전 제이슨 슈왈츠먼과 내털리 포트먼이 연인으로 등장하는 단편 ‘호텔 슈발리에’가 상영된다. 이 단편은 ‘다즐링 주식회사’와도 느슨하게 연결돼있다. 13일 CGV 상암, 압구정, 강변에서 개봉한다.

감독 웨스 앤더슨|출연 오웬 윌슨·애드리언 브로디

〈백승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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