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이소룡의 차이나타운 무술 지도

박사·이명석

세계 어디서든 중국인 돌보는 ‘쌍절곤 맨발’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인은 누구일까? 누군가 정치인 마오저뚱, 농구 선수 야오밍, 영화배우 성룡 같은 패들을 내놓는다. 나는 가벼운 실소를 터뜨리고 만다. 죄송스럽다. 여러분은 건방지다며 나를 야단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의 패를 들여다보면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야 말리라. 거기에는 이렇게 세 글자가 적혀 있다

[지구보다 큰 지도]⑪ 이소룡의 차이나타운 무술 지도

이소룡(李小龍).

불과 다섯 편의 영화를 내놓고 요절한 지 30여 년. 나는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뉴욕 할렘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의 흑인 가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랩을 하고, 케이블 영화 채널에 나온 권상우는 “대한민국 학교 전부 족구하라 그래”라며 그가 애호하던 무기 쌍절곤을 휘두르고,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서는 ‘싱하 형’으로 변신한 그가 “굴다리 밑으로 뛰어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소룡은 온몸을 스타의 자질로 꽉 채운 엔터테이너였고,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선구적인 무술가였다. ‘킬빌’ ‘쿵푸 허슬’ ‘매트릭스’ ‘와호장룡’… 오랜 삼류의 세계에서 주류로 올라온 액션 무술의 주인공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K1, 프라이드, UFC 등 21세기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총아가 된 이종격투기 단체들은 세계의 무술을 집대성해 철저한 실전파인 ‘절권도’를 창시해낸 이소룡의 선견지명을 찬탄한다. 때문에 이소룡 월드에 모인 세계 격투기들의 지도를 그려가는 일은 적지않은 흥분을 일으킨다. 만화 사상 최초로 1억만 부 신화를 돌파한 ‘드래곤 볼’,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대전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구도도 모두 그의 영화 속에 펼쳐져 있다.

‘맹룡과강’

‘맹룡과강’

이어 뒤늦은 발견이 있었다. 지도 위에 그려진 이소룡의 궤적은 순진한 권법 소년의 유랑이 아니었다. 그가 찾아가는 세계의 각지에는 언제나 생계의 터전을 얻기 위해 애쓰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헐벗은 몸에 빈약한 도구를 들고 토박이들, 혹은 침탈자들과 싸웠고 그 위기의 순간에 이소룡이 찾아왔다. 그의 쌍절곤이 각국의 무술 고수들을 부르고 있을 때, 그의 맨발은 세계 곳곳에 자리잡은 차이나타운을 향하고 있었다.

이소룡은 1940년, 용의 해에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태어났다. 1700년대부터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가던 중국계 이민의 행렬은 19세기 중엽 북아메리카로 향한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꿰어오던 미국이 노예 해방과 더불어 극심한 일손 부족에 처하게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대에 배를 탄 중국인들이 아시아 바깥에서 가장 먼저 차이나타운을 건설한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다. 그러나 이소룡에게 갓난아기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화교들의 노래에 대한 기억은 없었을 것 같다. 그가 생후 삼 개월됐을 때, 그의 가족들은 홍콩으로 옮겨갔다.

그를 키운 팔 할이 바람이라면, 그것은 홍콩항의 바닷바람이리라. 거기에는 아편전쟁 이후 자유무역항으로 급성장한 도시의 국제적인 분위기에 국공 내전과 중국의 공산화를 피해온 이민들의 땀 냄새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아버지를 따라 영화에도 출연하고, 차차차 댄스 챔피언이라는 경력도 얻는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말했다는 건 좀 뜻밖이다. “자네는 질문이 너무 많아 철학을 하는 편이 낫겠네.” 진로를 지도하던 선생의 말 때문이었는지, 그는 워싱턴 대학에서 드라마와 철학을 함께 공부한다.

‘용쟁호투’

‘용쟁호투’

철학도 연기도 조금 뒷전으로 물리친 이십대의 초반, 그는 무술 연마에 온힘을 쏟는다. 롱 비치의 공수도 대회에서부터 무술가로 빛을 발하고, 이어 ‘그린 호네트’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연기자로 명성을 얻는다.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복면해결사물인데, 그는 여기에서 운전수 겸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다가 호쾌한 액션 연기가 인기를 끌면서 핵심 조역으로까지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곧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가 처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깨닫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1971년의 ‘당산대형’(唐山大兄)으로부터 화려한 그의 이력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그는 태국의 제빙공장을 배경으로 마약 범죄단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중국인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방콕의 야오와라트 로드는 일본의 나가사키와 더불어 가장 오랜 역사의 차이나타운으로, 1700년대부터 중국 이민들의 거리가 만들어져왔다. 이소룡 식 중화민족주의의 원점이 되기에 꽤나 적당한 지역인 것이다. 태국은 무에타이의 본 고장이고 남아시아 특유의 찐득한 정서가 묻어있는 세계로, 영화 속에서도 상당히 잔혹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이소룡의 액션 연기가 완전히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세계 영화계에 ‘쿵푸 영화’라는 장르의 존재감을 확연히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화교의 첫 진출지에서 쾌거를 거둔 이소룡은 ‘정무문’을 통해 중국 본토로 돌아간다. 그리고 20세기 역사에서 중국인에게 가장 비참한 치욕을 준 장본인들에게 복수의 주먹을 들이댄다. 이 작품은 1910년 상해에 정무 체육회와 무술학교를 설립한 곽원갑(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과 동일인물)이 일본인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 은사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상해를 찾아온 이소룡은 그가 일본인 무도가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단신으로 일본 무도협회와의 싸움에 나선다. 이소룡은 일본의 검도, 유도 등과 대결하며 자신이 창시한 절권도의 진수를 펼쳐낸다.

이때부터 쌍절곤이 마력을 뿜어내, 몸 좀 쓴다는 남학생들의 멋내기 소품으로 각광받게 된다. 봉 두 개를 줄로 이은 쌍절곤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 송나라에서 사용했던 대반룡곤(大盤龍棍)에서 나왔다는 학설도 있고,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새로운 무기로 재탄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오키나와 무술인 코부도(古武道)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공수도장과 한국의 태권도장에서도 쌍절곤을 가르치지만 그 사용법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

중화세계를 장악한 이소룡은 ‘맹룡과강’을 통해 ‘아비요~’ 하는 괴조음(怪鳥音)을 내지르며 국제적인 무대로 날아간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였을까? 중국인의 유럽 이민 역사도 짧지는 않아, 여러 큰 도시들에서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민족주의 영향 때문인지, 이탈리아로의 이민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마저도 1980년대 초반 로마 다빈치 공항 근처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해줄 것을 요구하다 거부당했다든지, 최근 밀라노에서 중국인들과 경찰들의 충돌이 빚어지는 등 순탄치 않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맹룡과강’은 바로 이민 초창기의 로마에서 중국인 식당의 경영권을 노리는 현지의 조직 폭력배와의 다툼을 그리고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대부터 여차하면 총질을 일삼는 이탈리아인들이지만, 웬일인지 이소룡에게는 나약한 주먹질로 대항하다 미국에서 살인청부업자 척 노리스를 불러온다. 앞뒤의 연유야 어떻든, 우리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두 액션 영웅의 처절한 싸움을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역에서 많은 활약을 했으니, 고향인 홍콩 중국인들의 삶을 돌볼 차례다. ‘용쟁호투’는 홍콩 근처에 있는 섬을 배경으로 마약 공장을 굴리며 살인적인 무술 대회를 벌이는 범죄조직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이소룡은 소림사 출신의 젊은 무도가로 등장해, 중국 무술의 본령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이 작품은 ‘드래곤 볼’ 스타일의 무규칙 이종 무도대회의 원형을 만들어냈고, 거울의 방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으로 새로운 차원의 서스펜스 액션의 힘을 보여주었다. 국내 네티즌 사이에 유행한 ‘싱하 형’의 표정은 바로 이 영화에서 여동생의 원수를 죽이는 상황에서 분노와 슬픔을 토해내는 이소룡의 연기에서 나왔다.

‘사망유희’

‘사망유희’

유작인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 원래 이 작품은 ‘사망적유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있는 7층 탑(법주사 팔상전이 모델)의 꼭대기에 있는 보물을 얻기 위해 각층에 있는 무술 고수들을 꺾어나간다는 설정으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4층까지의 분량을 세트 촬영한 뒤 한국에서 로케이션을 하는데 11월의 악천후를 견디지 못해 철수하고 만다. 그 후 이소룡이 급사하는 바람에 미완이 되었지만, 뒤늦게 7층탑을 5층탑으로 바꾸고 앞뒤에 대역을 써서 졸렬하게 편집한 영화로 등장했다. 영화는 혹평을 면치 못했지만, 이소룡에게 쌍절곤을 가르친 장본인인 필리핀 출신 댄 이노산토, 한국의 합기도 고수 지한재, 제자이며 NBA 스타인 카림 압둘 자바와의 대결 장면만큼은 화려한 카리스마가 넘친다. 이 영화에 등장한 노란색 트레이닝복은 이소룡의 또다른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킬빌’의 우마 서먼과 ‘소림족구’의 골키퍼 등을 통해 오마쥬되고 있다.

33살의 요절은 비극이지만, 그로 인해 전설은 완성되었다. ‘사망유희’의 전개 상 ‘빌리 호’라는 영화배우 역을 맡은 이소룡이 가짜 죽음을 연출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이소룡의 실제 장례식 장면이 사용된다. 홍콩에서 죽었지만, 그 육신은 다시 먼 바다 길을 가야만 했다. 부인 린다는 두 사람이 만났던 시애틀로 그를 데리고 가 레이크사이드 묘지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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