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서 버림받은 노인들 “노인 성문제에 사회적 관심 절실”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고 싶으면 성 생활을 즐겨야 해요.”

22일 오후 경기 안성종합사회복지관. 60~80대 어르신들이 10여명 모여 나직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용돈문제부터, 자식문제, 재혼 문제 등 여러가지가 화제에 오르더니 급기야는 성생활로 옮아갔다.

고 모할아버지(76.안성시 삼죽면)가 수줍어 하다 먼저 말을 꺼냈다.

“일주일에 금, 토요일 중 하루를 택해 정기적으로 마누라와 관계를 해요. 결혼한 지 52년이 넘었지만 정기적인 부부관계 덕분에 금실도 좋아지고, 스트레스 해소나 인격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안성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난해 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한 ‘노인 성(性)교육’에 이 지역 노인 100여명이 참석해 진지하게 교육을 듣고 있다.<한국노인성교육연구소 제공>

안성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난해 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한 ‘노인 성(性)교육’에 이 지역 노인 100여명이 참석해 진지하게 교육을 듣고 있다.<한국노인성교육연구소 제공>

고 할아버지는 70대 중반을 넘겼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활기차 보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부 금실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고 할아버지가 그 연세에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젊어서부터 절제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일절 술, 담배를 멀리했다. 그러나 고 할아버지가 꼽는 진짜 건강 비결은 다름 아닌 건강한 부부관계였다.

고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집사람이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성관계 횟수도 줄어들고 그 것 때문에 부부갈등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서로 관심을 갖고 관계 횟수도 늘다보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금실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노년의 성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의 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 부족도 그 중 하나다. 노부부가 공개된 장소에서 애정 표현을 하려고 해도 주변 인식이나 가족들 눈치 때문에 쉽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노인들 스스로가 애정 표현을 부끄러워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성 관계 자체를 억누르는 경향이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과 지자체 등에서는 노인이 어떻게 성문제를 해소하는 지에 대한 통계도 전무하다.

이에 대해 고 할아버지는 불만을 쏟아냈다.

“성문제가 젊은 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성문제를 혼자서만 고민하다 그냥 묻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가 초고령화사회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데 노인의 문제가 먹고 사는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결혼한 지 51년째인 김모씨(79.안성시 서운면)는 성에 대해 보통 노인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김씨는 “한달에 최소한 5회 이상은 관계를 맺는다”면서 “몇 년전까지만 해도 성(性)에 대해 무지했는데 복지관에서 정기적인 교육을 받고 난 후 자연스럽게 관계도 잦아지고 부부사이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주위 친구들을 보더라도 홀로된 노인들은 벌써 몇 년전에 세상을 등졌고, 65살도 안된 한 후배는 늙은이 행세를 하더니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며 성 관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노인의 성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없는 현 세태를 씁쓸해 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성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는 그런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반면 성에 대해 무감각한 노인도 의외로 많았다.

2년전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혼자 생활하고 있다는 조 모할아버지(81)는 고씨와 김씨 할아버지의 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입장을 보였다.

조 할아버지는 “젊었을때부터 직장생활 때문에 부부생활(성 관계)에는 무감각 했었다”면서 “그러나 2년 전 암으로 할머니를 먼저 보내면서 말 동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친구(할머니)를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는 질문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기는 하나 말 꺼내기도 부끄럽고 혹시나 자식들이 반대할까봐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회복지관에서 4년째 노인 성교육을 강의해 온 한국노인성교육 연구소 임장남 소장(문학박사)은 “노인들의 행복 범위는 결국 성(性)으로부터 시작된다”며 그러나 “성 욕구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인들 대부분은 가족 등 주변의식 때문에 배우자에게 성 관계나 애정 표현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이어 “남자 노인은 물론 여자 노인도 폐경이 왔어도 죽기 전까지는 성생활을 할 수 있으며 75세 이상 일부 할머니도 성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노인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은 학생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20년 이내에 초 고령사회가 오면 노인들의 성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처럼 국가에서 운영하는 성 교육기관 설립 등 성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서상준기자 ssjun@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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