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작가’ 소문에 가려진 ‘진가’ 찾기

김종목 기자

‘2006년 크리스티 경매서 3억2000만원 낙찰’ 김동유 작품전

작가 김동유에겐 최고로 잘 팔리는 작가란 수식이 따라 붙는다. 이른바 ‘솔드아웃’이고, ‘블루칩’ 작가다.

지난달 31일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지독한 그리기 : figure 2 figure, 김동유 전’ 기자회견에서도 ‘상업작가’란 호칭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기자들이 그렇게 부르는 거죠. 일반적으로 상업작가로 인식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민감한 반응이라기보다, 확대돼 매체로 흘러나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보단 부풀려지는 면이 있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구겨진 이미지를 차용해 그린 ‘구겨진 모나리자’(왼쪽)와 ‘구겨진 신문’. | 성곡미술관 제공

구겨진 이미지를 차용해 그린 ‘구겨진 모나리자’(왼쪽)와 ‘구겨진 신문’. | 성곡미술관 제공

사람들은 2006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추정가의 25배인 3억2000여만원에 팔린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을 떠올린다. 미술시장이 최고조로 치닫던 당시 수립됐던 이 판매기록은 신화가 돼 지금도 회자된다. 시장이 만들었건, 작가가 추구했건 ‘상업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동유의 작업세계와 작품성은?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생존 작가 중 작품이 가장 ‘비싼 값’에 해외미술품 경매시장에 낙찰된 작가라는 허명에 가려 우리는 정작 김동유의 진가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동유는 그림처럼 우리 인식 속에 자리잡은 하나의 허구적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동유 화백 | 성곡미술관 제공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동유 화백 | 성곡미술관 제공

서울 성곡미술관 2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김동유의 진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리다. ‘회고전’에 방점을 뒀다. 1980~90년대 작가의 치열한 모색이 전시장을 관통하는 줄기다. 미술관 쪽에서 “지금까지 이른 과정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작가도 “상업화랑 전시 성격으로 해선 안된다. 회고전 성격으로 가자”며 동의했다.

3층 전시실 한 쪽에 걸린 드로잉 한 점이 전시회 성격을 잘 말하는 듯하다. ‘박세직 수경 사령관’에 관한 헤드라인과 부제와 관련 기사가 들어간 1면 신문이 사실주의 기법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신문은 구겨져 있다. 작가 김동유가 고교 1년 때인 1981년 어느날 화가 나 구겨버린 신문 1면을 그린 드로잉이다.

고교 1년 때의 ‘구겨진 신문’은 30년 가까이 흘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자크 루이 다비디의 ‘나폴레옹’ 같은 고전 복제화를 구긴 이미지를 다시 차용한 작품들로 발전한다. 용도폐기된 이발소 그림을 주워 나비를 그린 작품이나 제사상과 생일상을 대비시킨 작품들에선, 지금의 김동유를 이루는 산자와 망자, 죽음과 부활의 모티브가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걸 볼 수 있다.

86년의 ‘얼굴 습작’도 지금 이중작업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흑인의 얼굴을 중심으로 그 시대 핍박받았던 여러 유무명의 인물들을 함께 녹여냈다.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전단지를 그대로 차용해 재현한 작품에선, 일종의 정치·사회 코드를 읽어낼 수 있다. 다른 인물에 비해 인물 윤곽이 흐릿한 이승만의 경우 모호한 인물 속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중작업’도 이번 전시의 큰 줄기다. 마릴린 먼로 픽셀로 존 F 케네디와 박정희를 그린 특유의 대형 이중작업 작품 수십점을 전시 중이다. 그 이미지는 너무나 익숙한데, 멀리서 보면 케네디지만 가까이 가면 먼로가 되는 착시 효과는 직접 봐야 느낄 수 있다. 이런 특징도 김동유가 80, 90년대 설치·영상 작업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회화를 파고든 결과다.

김동유는 “80, 90년대 우리 화단은 설치, 기술, 영상이 유행했는데, 평면의 한계를 가진 그림이 설치·영상에 버금가는 파워를 갖기 위해서는 단선적 이미지보다는 두 이미지를 하나로 공존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그림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 김동유는 이번 전시에서 고흐 얼굴로 해바라기를 그린 신작을 내놓았다. 이전 작품과 달리 해바라기를 이루는 고흐의 얼굴(픽셀)이 제각각이다. 김구의 큰 얼굴을 이루는 작은 픽셀의 얼굴은 한용운, 함석헌 등의 여러 인물들이다. 김동유의 작업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유명인을 그린 인물화란 점에서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떼어놓고 볼 수 없지만, 광목에 작은 나비 픽셀로 큰 화면을 이루는 부처상을 그린 독창적 이중작업 작품을 보면 팝아트에 김동유를 가둬둘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진다.

이번 전시회 부제는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는 “저 말고도 지독하게 그리는 작가가 많다. 부담스러운 제목”이라고 했지만, 미술관의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은 “김동유는 25년 동안 인물과 사물의 구상성에 끝없이 집착하고 천착했다. 시류 변화나 유행에 따른 세속적 변화에 미동도 하지 않고 지독할 정도로 구상 형식을 파고들었다”고 평했다. 28일까지. 성인·대학생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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