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송 독립의 가치 훼손한 엄기영씨의 다중인격

엄기영. 문화방송(MBC) 앵커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래 언론인·방송인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실제 그가 그런 자질을 갖추었든 아니든, 그는 방송의 공공성·공정성·독립성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기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과연 MBC 사장이 된 뒤에도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섰다.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위원장의 터무니없는 압력과 경영개입에 시달리면서도 MBC가 관제방송으로 전락되지 않게 나름의 기여를 했다. 물론 그가 일관되게 MBC의 공공성과 독립성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권과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사장 자리를 보전하는 조건으로 사퇴하고 재신임받는 굴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애초 그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무릅쓰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김우룡 위원장의 사퇴 요구에 대해 “MBC의 독립성과 구성원들의 자존심, 공영방송의 수장이라는 책무”를 들어 거부한 바 있다. 그리고 방문진의 부당한 인사 개입에 맞서 사표를 던짐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가 이명박 정권의 방송 통제의 부당성에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퇴임의 변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 경영의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함으로써 자기 자리를 걸고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의 중요성을 일깨운 인물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한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가 한나라당을 위해 지난 7·28 재·보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에 출마한 한기호 후보, 태백·영월·평창·정선에 출마한 염동렬 후보를 격려하는 활동을 한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MBC를 정권의 홍보도구로 전락시킨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고, 엄 전 사장이 말한 방송의 공영성·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야당 후보는 떨어뜨리겠다는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런 행태가 “개인적 친분”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그가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내친김에 강원도지사 후보로 영입할까 생각 중인 모양인데 그가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가 되든 말든 이미 다중인격적인 처신으로 엄기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지닌 방송의 공영성·독립성이라는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유명 언론인이 자기의 명성과 영혼을 파는 행위는 개인적 손실일 뿐 아니라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가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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