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은 아직 안 정해… 전략기획실 부활 전망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42)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삼성그룹 후계체제 본격화와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또 막대한 권한과 함께 경영실적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 검증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17일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참관하고 김포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혔다.
이 회장은 “아들의 승진을 결정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기자들이 재차 “연말에 승진시킬 결심을 굳혔느냐”고 묻자 이 회장은 다시 “네”라고 대답했다.
이 부사장은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 사장 직함을 달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이 내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선임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의 결정은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어느 정도 합격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08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재용이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하고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치 않으면 이어받지 못한다”고 말해 이 부사장의 능력을 전제로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올 들어 삼성전자의 경영실적이 좋은 것도 이 부사장의 후계승계 작업을 서두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 부사장은 그동안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삼성전자 사업부의 경영을 조율하는 한편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이 회장은 지난달 멕시코 출장을 전후해 ‘젊은 리더론’과 ‘젊은 조직론’을 잇달아 언급해왔다. 또 11일 광저우로 출국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인사 폭을) 넓게 하고 싶다”고 밝혀 세대교체형 인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이 부사장의 승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못 정했다”면서도 “승진할 사람은 해야 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이 부사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로 유학을 떠났다가 2001년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복귀한 후 상무(2003년) 및 전무(2007년)로 승진한 뒤 삼성전자 고객담당최고책임자(CCO)를 맡았다.
2008년 4월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당시 CCO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12월 부사장 겸 COO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이번에 1년 만에 다시 사장으로 승진하는 셈이다.
이 부사장이 승진 후 맡게 될 보직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삼성 내부에서는 향후 성장성이 높고 위험부담이 덜한 일부 부품사업부를 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경영실적이 악화될 경우 책임 소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COO를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부사장의 후계체제가 가시화되면서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전진배치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말 승진인사 명단에서 빠진 이 전무는 호텔신라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후 면세점 사업과 에버랜드, 유통을 중심으로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이 전무는 건설사업 부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삼성물산의 주택사업을 추가로 맡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나온다. 최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주택사업본부가 삼성타운 밖 역삼동 대륭빌딩으로 이사하면서 이 같은 소문은 더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승진한 이서현 전무도 일정 부분 지분 확대가 예상된다.
이 회장 일가의 전진배치와 맞물려 ‘2인자’인 이학수 고문과 김인수 전 사장을 중심으로 한 전략기획실의 부활도 초읽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를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 부사장의 승진은 올 3월 이 회장이 복귀하면서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면서 “전략기획실이 부활하면 권력승계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40)은 2009년 8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2)은 2006년 12월에 각각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