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이 동성애, 이번 2편은 ‘통간’보단 첫사랑 순애보”

한윤정 기자

조선여성 3부작 ‘불의 꽃’ 펴낸 김별아

‘격조한 세월에 울울한 마음이 깊으니, 함께 맺은 것을 함께 풀고자 하노라…!’

작가 김별아씨(44)의 신작 장편 <불의 꽃>(해냄)은 청매죽마(靑梅竹馬:어린 시절 인연을 맺은 연인)의 치명적인 사랑을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모티브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9월25일의 첫 번째 기사에서 나왔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왕명을 출납하는 벼슬) 조서로와 통간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김씨는 이 문장으로부터 유녹주와 조서로의 길고 질긴 인연을 상상해 냈다. 고려 멸망과 조선 개국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부모를 잃은 녹주는 먼 친척인 서로의 집에 맡겨지고 두 사람 사이에 연정이 싹튼다. 그러나 녹주를 탐탁잖아 하던 서로의 어머니는 녹주를 개성의 암자로 보내 수경심이란 비구니로 살게 한다. 그 후 환속해 절 살림을 돕던 녹주는 상처한 이귀산의 후처가 되고 서로와 재회한다.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서로가 녹주에게 띄운 서한을 계기로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조선의 문치(文治)는 무신·여성·서리(아전)·서얼이라는 네 계층을 누르면서 확립되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억압받은 여성의 삶을 소설화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16일 열린 <불의 꽃>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별아씨는 “어떤 정념과 격정이 목숨을 걸고 죽도록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  해냄 제공

16일 열린 <불의 꽃>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별아씨는 “어떤 정념과 격정이 목숨을 걸고 죽도록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 해냄 제공

이 소설은 2011년 발표한 <채홍>에 이어 ‘사랑이라는 죄목으로 국가의 처벌을 받은 조선 여성 3부작’의 두번째 이야기다. <채홍>은 조선왕조실록의 유일한 동성애 스캔들로, 세종의 며느리인 순빈 봉씨의 이야기다. 이번 소설 역시 세종시대의 일인 데다 세 번째 소설도 1400년대 후반의 일화여서 ‘3부작’의 시대 배경은 모두 15세기다.

“유교의 엄격한 통제가 아직 확립되기 이전이라서 사건이 많았던 것이지요. 중기인 성종 때 가면 재가한 여성이 낳은 자식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는 법령을 만드는 식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신분제와 결합됩니다.”

유녹주와 조서로의 사연은 통간이라기보다 첫사랑의 순애보에 가깝다. 특히 관계가 발각된 뒤에도 유녹주는 참형을 당하지만 조서로는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돼 여성의 입장에서는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만큼 억울하겠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가혹한 형을 집행한 세종 역시 13년 뒤 비슷한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유씨의 사건을 떠올리며 ‘내 나이 젊고 한창 때의 일이다. 실로 율외(律外)의 형벌을 가하는 것은 잘한 정사가 아니다’라는 후회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후 간통 사건은 사형 대신 유배를 보내는 게 관례가 됐다.

올해로 작가생활 20년을 맞는 김씨는 11편의 장편을 발표했는데 그중 8편이 역사소설이다. 대담한 성애 묘사로 화제를 모았던 <미실>을 비롯해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등을 펴냈다.

<채홍>이 궁중비사, <불의 꽃>이 순애보라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여성을 등장시킬 세 번째 작품은 여성의 욕망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3부작 각각의 차별성을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만큼 역사소설을 꾸준하고 집요하게 쓰는 여성 작가는 드물다. “절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더욱 대중적으로, 더욱 독자에게 다가서는 소설을 쓰겠다”는 김씨는 ‘19금’ 장면도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지난해 원작을 복원한 무삭제 개정판 <미실>을 내놓기도 했다.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출판환경, 독자성향, 매체가 계속 바뀌는 시대에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 어떤 인물을 만들어내는지에 달린 게 아닐까요.”

김씨는 “20년의 작가생활 가운데 10년은 무명이었고 여전히 나만 쓸 수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며 “소설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장르, 필패할 수밖에 없는 장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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