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청년·순교’ 전파 순례길… 이례적으로 시복식 직접 주재

김근수 | 평신도 신학자·<교황과 나> 저자

(4) 교황은 왜 한국에 오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결정이 발표되었을 때 사실 교회 내 많은 인사들은 이 결정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세계청년대회가 아닌 아시아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한 적이 없고, 교황청 밖에서 열리는 시복식 행사에 교황이 참석하는 사례도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8월은 교황에게 휴가철이다. 교황뿐 아니라 교황 방한을 준비하는 교계 인사들도 휴가를 반납해야만 한다.

바티칸은 이미 바캉스 시즌에 들어갔다. 역대 교황들은 로마에서 기차로 25분 거리인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때다. 그러나 현재 바티칸은 방한 준비로 분주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는 국무성 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 20여명을 비롯해 대규모 순방단이 동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월25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에 도착해 미사 집전 장소로 향하던 도중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분리장벽 앞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서안지구를 가로막은 8m 높이의 분리장벽은 두 국가의 오랜 갈등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베들레헴 |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월25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에 도착해 미사 집전 장소로 향하던 도중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분리장벽 앞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서안지구를 가로막은 8m 높이의 분리장벽은 두 국가의 오랜 갈등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베들레헴 | AP연합뉴스

▲ 바티칸시국 국가원수로 방문 요청한 청와대 방문
세계 가톨릭 수장으로서 사회주의 익숙한 아시아
‘가난한 복음’ 선교 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외 나들이는 지난해 세계청년대회가 열린 브라질과 올해 중동지역 등 두 차례에 그쳤다. 그는 아시아 첫 방문지로 8000만 가톨릭 신자가 사는 필리핀이나 10만명의 순교자가 있는 일본, 종교대화의 의미가 남다른 인도가 아닌 한국을 택했다. 여러 모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는 왜 한국에 오는 것일까.

교황은 한국 정부와 한국천주교 공동초청으로 방한한다. 한국천주교 일각에서 주장하듯 교황이 단순한 사목 방문을 위해 방한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한국 정부의 초청도 수락했다. 교황 방문은 흔히 방문국 정부에 유리한 정치적 기회로 작용한다. 교황을 초청하고서 정치적으로 교황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을 정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교황은 천주교 신자에게는 종교 지도자이지만 방문국 정부에는 외국의 국가원수다. 교황은 종교인이 아니라 정치인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한다. 교황이 국가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바티칸시국이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호실은 교황을 종교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외국 국가원수로서 경호하는 것이다. 종교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교황의 두 얼굴은 교황의 독특한 특징이자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낳는 근원이다.

천주교 내부에서 보면 교황 방한은 아시아청년대회와 시복식 두 가지 행사를 치르기 위해 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는 8월13일부터 17일까지 대전·충남 지역에서 열린다. 아시아청년대회는 경제적 이유로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기 어려웠던 아시아 지역 젊은이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1999년 태국에서 열린 제1회 대회 이후 대만, 인도, 홍콩, 필리핀 등을 순회하며 3년마다 열리고 있다. 가톨릭 청년 20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세계청년대회가 아닌 아시아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대회는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는 주제로 진행된다. 제3회 한국청년대회도 함께 열리며 아시아 22개 국가에서 6000여명이 참가한다. 교황은 아시아 젊은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고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아시아와 젊은이가 중요한 두 단어다.

8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과 동료 123위 시복식이 거행된다. 시복식은 보통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교황을 대리해 주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 개막에 맞춰 8월14일 방한해 8월16일 시복식을 직접 주재한다.

천주교에서 시복은 뛰어난 덕행이나 순교로 존경을 받는 인물에게 ‘복자’ 칭호를 내리는 것이다. 복자는 성인 아래 단계로 시복 뒤 5년이 지나야 성인으로 올라가는 시성 청원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번 시복 대상자 124명은 주로 조선 후기에 순교한 초창기 신자들이다.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 53위, 기해박해(1839년) 전후 순교자 37위, 병인박해(1864년) 순교자 20위,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위가 있다.

한국천주교 역사는 1784년 시작되었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에 가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귀국해 정약종 등에게 세례를 베푼 날을 기점으로 한다. 230년을 맞은 역사에서 지금까지 시성된 인물로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를 비롯한 성인 103위가 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해 시성식을 집전했다. 그 뒤 한국천주교는 2001년부터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를 꾸려 1984년 시성 때 빠진 순교자들의 시복을 준비해왔다.

아시아청년대회와 시복식이라는 두 행사를 종합해보면 이번 교황 방문의 핵심 단어는 아시아, 청년, 순교가 되겠다. 이 단어들을 중심으로 교황 방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존재감은 아시아 대륙에서 별로 돋보이지 않는 편이다. 가톨릭 인구는 아시아 전체 인구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남미 대륙에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쳤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시아 선교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톨릭은 중국에서 제사 문제와 교회의 대토지 소유로 인해 선교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방 영주들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역시 선교에 실패했다. 교황청은 현재 중국,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아시아에서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에 익숙한 아시아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는 몇 가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는 점, 교회는 부자 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가난한 교회의 모습 말이다. 더구나 유교, 불교 등 지적으로 수준 높은 이웃 종교들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폭력에 의지한 강제선교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돈에 의지하는 경제선교의 시대도 이미 끝장났다. 이제는 아시아에서 종교 교리의 설득력, 교회 조직의 매력,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모범으로 선교해야 하는 시대다.

아시아에서도 청년들이 교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봉건제 조직으로 무장한 가톨릭교회가 민주주의 세례를 받고 자란 청년 세대에게 어떻게 해야 감동을 줄 것인가. 종교와 청년은 물과 불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톨릭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여기에 한 가지 보이지 않는 기대가 더 있다. 교황 방한이 남북화해를 중재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바티칸에 유학 중인 한국인 신부들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바티칸이 할 일을 모색하기 위해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직접 현장을 살펴본다는 의미를 이번 방한에 부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이름 붙였다. 아시아 대륙에서도 유행하는 신자유주의 풍조에 가톨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권력의 문제에 대해 가톨릭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 어떻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이러한 주제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교황청은 알고 싶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수준과 실력을 교황청은 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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