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소방이야기-16

필리핀 소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2014년 12월 경기도소방학교와 필리핀 소방국간의 교육업무협약(MOA) 체결이라는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하고자 필리핀을 방문했다. 우리가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는 태풍이 막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지난 해 슈퍼 태풍 하이옌에 이어서 올 해는 태풍 하구핏이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을 멍들게 만들었다.

올 한해 경기도소방학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필리핀 소방관들을 위한 국제소방관 과정을 지원해 줬다. 그런 경기도소방학교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필리핀 소방국은 우리를 제41주년 필리핀 소방의 날 행사에 초대했다. 행사장 앞에 놓인 빨간 카펫 위로 도열한 필리핀 소방국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순간 600여명의 필리핀 소방관들이 형제의 나라 대한민국의 소방관들을 우렁찬 박수로 맞이한다.

올 해 개최된 필리핀 소방의 날 행사에서는 각종 재난으로부터 수고한 소방관들의 노고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으며, 필리핀 소방에 공헌이 큰 기업과 개인에 대한 감사패 전달이 이어졌다. 소방의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로는 경기도소방학교와의 교육업무협약 체결식이 준비되었다. 이번 교육업무협약을 통해 필리핀은 매년 자국의 소방관들을 경기도소방학교로 보내 양국 간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필리핀의 인구는 약 1억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지키는 필리핀 소방관의 숫자는 고작 1만7366명이다. 소방차는 총 1990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중 30% 정도는 이미 사용년수가 30년이 훌쩍 넘은 것들이며, 인구수에 비례하여 보면 아직도 1000여의 소방차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 구급차는 모두해서 87대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화재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공기호흡기도 총 752개뿐으로, 현장 활동시 소방관들이 같이 나누어 사용해야만 한다.

이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이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교육 훈련을 위한 시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는 9개의 잘 갖추어진 소방학교가 있지만, 필리핀에는 비간부를 위한 소방학교가 1개, 소방간부를 위한 4년제 사관학교가 1개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방문한 필리핀 소방학교에는 때마침 650여명의 신임 소방관들이 아주 작고 허름한 강의실에 앉아 교육을 받고 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에어컨은 기대할 수도 없다. 그저 작은 선풍기 한 대만이 더운 바람을 내 뿜으며 외롭게 돌고 있다.

필리핀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소방서와 기관들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지금의 필리핀 소방의 모습이 초창기 대한민국 소방의 선배들이 어렵게 고생하던 시절의 모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선진화된 소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리핀 소방은 한국, 싱가포르, 미국, 일본, 홍콩, 중국 등과의 교류를 통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필리핀의 안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그들의 땀과 노력에서 필리핀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올 한해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글로벌 리더인 대한민국 안전의 한축을 담당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조직개편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국가직 전환이란 당면과제 앞에서 다소 의기소침하고 조직에 대한 불평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필리핀 소방을 통해서 초창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이란 꿈을 키워오던 대한민국 소방의 어제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새로운 소방차와 장비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소방관의 열정과 자부심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마치 누군가가 고급 승용차를 탄다고 그 사람의 인격까지도 반드시 고급이 아닌 것처럼, 비록 소방차와 장비는 낙후되었으나 소방관으로써의 열정과 자존감까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필리핀 소방관들이 가르쳐 주었다.

지금 내 주위를 살펴보자. 그리고 다가오는 2015년에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겸손함으로 한 해를 시작해 보자.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많은 것들은 누군가가 아주 간절히 원하는 내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각자가 맡은 소임에 충실할 때 대한민국 소방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모든 소방인 여러분들!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기도 소방학교가 지난 14일 필리핀 소방국으로 부터 초청을  받아 양국간 교육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경기도 소방학교가 지난 14일 필리핀 소방국으로 부터 초청을 받아 양국간 교육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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