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금강 스님 특별기고

슬픔 극복할 조건을 만들어라

금강 스님 | 미황사 주지

지난해, 잠수사들이 시신 한 구, 한 구를 찾을 때마다 진도 실내체육관은 점점 비어갔고, 남은 가족들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날씨가 더워지면 바닷속이 걱정되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수색이 멈춰질까 불안하고, 태풍이 닥치면 주저앉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느 날 추워서 더 이상 물속에 들어갈 수 없다며 아주 손을 놓아버렸을 때는 그들도 희망을 놓아버렸다.

[세월호 1년 금강 스님 특별기고]슬픔 극복할 조건을 만들어라

한 달 전, 팽목항에서 아직도 실종자 가족으로 있는 은화, 다윤이 엄마를 만났다. “저 바다에 아직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곳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생존한 친구들이 분명히 저 배에 함께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어미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확인하고 싶습니다.” 목탁밖에 칠 줄 모르는 나를 붙잡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소연한다. “예, 한 달 동안이라도 저 바다를 보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 팽목항이 잊히지 않도록.”

세상에 피어 지지 않는 꽃이 있을까마는 이 봄 유난히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빠르다. 매화가 피기 시작하더니, 온 산에 분홍 진달래가 피었다.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온 땅에 벚꽃이 만개하였다. 엄마들은 또 걱정을 한다. “사람들이 꽃을 보느라, 세월호를 잊으면 어쩌지….”

잊을 수 없다. 아니 잊히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어린 아이가 길가다 넘어져도 모두가 뛰어와 일으켜 세우는 게 세상인심인데 두 눈 빤히 뜨고 배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우리가 어찌 그 안타까움과 슬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배 안에 아직 피지도 못한 꽃 같은 우리의 자식들이 있는데 아무 손도 내밀지 못했던, 무능했던 우리가 그걸 잊는 건 죄악이다.

사실 잊히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월호가 침몰된 상태에서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어서 슬픈 것이다. 도리어 사고와 무능에 대한 내성과 피로감에 중독되고, 사회적인 일을 개인적인 일로 분리시키고, 외면하게 만드는 현실이 슬프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었다. 이미 독화살을 맞았을 때는 화살을 뽑고 치료하는 것이 급하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화살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한쪽에서는 진정성 없는 저울질이나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느라 피멍이 들었다.

이제는 각자의 입장 속에서 슬퍼하고,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조건은 먼저 슬픔은 슬픔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고 충분한 슬픔이 필요하다.

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인지 따위로 귀중한 시간을 놓치는 어리석음은 당장 멈추자. 그리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자. 지난 가을 추위에 중단한 수색을 계속하고, 배를 인양하여 사고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사회적 원인과 개별적 원인을 찾아서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사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정직한 조사가 올바른 견해를 만들고, 현명한 지혜를 낳는다. 그리해야 정직하고 건강한 미래를 후손에게 전할 수가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듯 결국 세월호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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