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낙타

김석종 논설위원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하는 아포리즘이다. 여기서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인내의 정신을 가리킨다. 서영은의 소설 <먼 그대>의 노처녀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에 한 마리 낙타를 키운다. 그는 애인인 유부남이 딸을 강제로 뺏어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네 힘으로 네 속에서 낙타를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게 해 줄 거야.”

작가 김한길(국회의원)의 소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재미동포의 꿈과 좌절의 상징으로 낙타를 동원한다. “오아시스가 나타나도 낙타는 열광하지 않아. 물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그리고 또 가는 거야. 뛰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무조건 가는 거야.” 류시화의 시 ‘낙타의 생’도 마찬가지다.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낙타는 중동 등지에서 ‘사막을 건너는 배’로 불린다. 200㎏의 짐을 지고 하루 100㎞를 간다는 낙타는 섭씨 57도에서 물 없이도 8일을 버틸 수 있다. 성경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마태복음 19장)고 비유했다. 예수에게 세례를 준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고행을 했다. 과거 대상(隊商)들은 낙타에 물건을 싣고 실크로드를 오갔다. 지금도 사막에서는 낙타가 여행자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 북방정책에 겁을 먹은 거란이 낙타 54필을 보냈지만 다리에 매어놓고 굶어죽게 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1922년 창경원 동물원 개원 때 들여온 이래 현재는 여러 동물원에서 관람용으로 키우고 있다.

이처럼 별 인연도 없는 한국땅에서 낙타가 수난을 겪고 있다. 메르스의 매개체로 지목돼 동물원의 낙타가 격리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고, 낙타유나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황당한 예방법까지 발표해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여튼 이래저래 사막의 낙타 같은 인내심이 필요한 한국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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