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조각가 동상 “서있기 부끄럽다”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표준영정의 상당수가 친일미술가에 의해 그려졌다는 사실(경향신문 5월12일자 5면 보도)이 밝혀진 데 이어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도 친일행적 논란을 빚고 있는 김경승과 윤효중에 의해 사실상 독점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친일의 행적은 표준영정보다 조각 부문에 더 심각하게 투영돼 있다”며 그간의 조사·연구 결과를 이같이 밝히고 “특히 동상이나 조각은 밀폐된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에 공개돼 있어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친일 조각가 2인의 작품 논란=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941년부터 해방까지 조각가로 활약한 대표적 인물은 김경승, 윤효중, 이국전, 조규봉, 이성, 박승구, 윤승욱 등 7명이다. 이중 친일행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국전, 조규봉, 이성, 박승구 등 4인은 월북했으며 김경승과 윤효중이 해방 이후 조각계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김경승은 친일화가 김인승의 동생으로, 형제가 친일행적이 있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박실장은 또 윤효중에 대해서는 ‘천인침’과 ‘아버지 영령에 맹서하다’ ‘아베 소위상’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들 2인이 제작한 역사적 인물의 동상은 71개로 집계됐다. 이중 51개가 김경승 작품이다. 부산과 경남 충무 등 각지에 흩어진 이충무공과 관련된 조각만 4개이다. 대표적인 항일운동가 김구(남산·사진)를 비롯해 안창호(도산공원), 안중근(안중근 기념관), 전봉준(황토현 전적지), 이상재(종묘공원), 세종대왕(덕수궁), 김유신(남산), 정몽주(서울 제2한강교) 등의 동상도 그의 손을 거쳤다. 서울 파고다공원에 있는 3·1운동사 부조와 민주화의 상징인 4·19 기념탑도 그의 작품이다.

윤효중은 4·19 혁명때 철거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의 제작자로 이름나 있다. 조은정 한남대 겸임교수는 “그는 이승만과 배재고보 동문으로 이정권을 등에 업고 당시 최고의 조각가로 영예를 누렸다”고 말했다. 윤효중은 이충무공(진해), 민영환(비원), 일제 육영사업가 최송설당여사(김천중학교), 동학 창시자 최제우(대구 달성공원) 등의 동상을 빚었다. 언더우드 동상(연세대)도 그의 작품이다.

◇“역사 교육장 조성하자”=민족문제연구소는 “선열의 모습을 오염된 정신과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민족혼도 오염돼 전달된다”며 “이들 친일 예술가의 손에 의해 제작된 동상들이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원 등 공공장소에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김씨와 윤씨의 작품을 모두 철거, 새롭게 조성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형물과 함께 조각가의 행적 등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부끄러웠던 자화상을 직시하고 역사 반성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술평론가 최열씨(가나아트센터)는 “그들의 작품을 파괴하기보다는 독립기념관 한쪽에 ‘친일작가의 위인동상’ 공원을 조성해 교훈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심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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