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워하고 사랑했습니다…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5) 소설가 신경숙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추도사를 써 달라는 청에 나는 못 쓰겠다 했다가 다시 쓰겠다 했습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못 쓰겠고, 그래도 고이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쓰고 있습니다.

[특별기고]미워하고 사랑했습니다…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당신이 가신 날 아침에 나는 제주도의 우도로 들어가기 위해 천진항에 있었습니다. 배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잠시 틈이 나 대합실에 켜놓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소식을 알리는 자막이 떴습니다. 눈이 나빠 흐릿한 글씨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먹먹한 마음으로 TV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내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읽은 글씨가 분명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는 듯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이른 아침의 분주한 낯선 항구 대합실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해버리고 세상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배를 놓쳤고 그 다음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공동상태는 계속 되었습니다. 우도에 도착해 네 시간쯤 섬을 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섬에서 보는 바다는 아름다웠고 섬사람들은 마늘밭에서 땅콩밭에서 그리고 해안에서 생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 섬에서 다시 나오는 배 안에서 눈이 시렸습니다. 다 알겠는데…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마음은 넘치도록 다 알겠는데…그래도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되지요…혼자 웅얼거렸습니다. 충격을 헤치고 그제서야 비통한 마음, 그제서야 원망스러운 마음, 그제서야 자책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인에게 처음으로 은행까지 찾아가 후원금을 내게 했던 존재입니다. 그게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당신은 권위와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던 정치인입니다. 당신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여 근심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내는 당신이 한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지닌 꿈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당신 곁엔 어린아이들, 젊은 친구들, 사회적 약자들, 서민들이 울타리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는 그들이 미래를 걸고 지지하는 분이라 당신이 희망으로 보였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당신이 지닌 올바름을 지지하는 이들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의지할 순 없었는지요. 오류가 있다고 해도 그 오류마저도 껴안고 딛고 일어설 수는 없었는지요. 그 일까지 해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테지요. 그래도 힘든 길만을 자처해서 갔던 당신이었으니 그런 힘도 있었으리라, 끝끝내 남는 이 미련 때문에 지난 며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디 나뿐이었겠습니까.

언젠가 혹, 당신을 조우하게 되면 내가 내 독자들에게 써주는 말, 꿈을 이루라는 그 말을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모욕과 오류의 시간마저도 견디고 그 위에서 또 다시 당신이 품었던 꿈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시라고.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과도 닿아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군요.

이제 미워했던 마음도 사랑했던 마음도 내려놓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마지막 마음만을 생각합니다. 그 벼랑 끝의 고독과 번민만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리 될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만 생각합니다. 당신이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자라나고 청년들은 늙겠지요. 꽃은 피어나고 나비는 날아다니겠지요. 당신은 참으로 가여운 분이십니다. 당신의 일생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던 이루지 못한 꿈들을 내려놓고 이제 편히 쉬시기를. 당신을 보내는 저 눈물의 마음들도 잊으시고 가벼워지시기를.

그리고 부디 안녕히 또 안녕히 가시기를.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