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이영화]‘폰’여주인공 지원역 하지원

청순한 여배우들이 님프같이 스크린을 사뿐히 밟을 때 그녀는 ‘가위’ ‘진실게임’ 등 일련의 공포영화에서 메디나같이 어두운 팜므파탈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덕분에 20대 초반의 나이로서는 다소 달갑지 않을 법한 별명이 그녀의 가슴에 달려있다. ‘호러 퀸’. 그래서인지 청순하게 화장을 해도, 깜찍한 프릴달린 옷을 입어도, 그녀의 반달형 눈매는 금방이라도 공포에 아뜩해하는 모습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 스크린과 객석 사이

실제로 하지원(23)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런 영화 속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진다. 깍듯한 매너, 자칫 깨질 것만 같은 가녀린 턱선과 목소리. 어쩌면 불협화음을 감수하고 몇 해에 걸친 갈등 끝에 강단있게 소속사를 옮긴 ‘씩씩함’을 그녀의 초상 위에다 덧발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긴, 그 정도 강단이라면 영화 ‘폰’에서는 안성맞춤이었겠다.

“안병기 감독이 관객입장에서 모니터해달라면서 시나리오를 내밀었죠. 정말 맘에 들었는데, 배역 제의는 한참 후에야 하시더라구요”. 또다시 공포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그녀로서는 일종의 모험일 수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니콜 키드먼의 ‘디 아더스’를 보고난 뒤 마음을 바꿨다. 영화를 끌고 가면서 눈빛만으로 관객을 질리도록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연기라면 한번 해볼 만했다.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벌어지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을 끝까지 파헤치는 잡지사 기자 지원역.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 이르면 지원의 대담함은 얼이 빠질 정도다. 그런데 의외다. 정작 본인은 겁이 무척 많다니.

“지난 여름에 모 방송사의 ‘조용한 가족’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코스별로 데리고 다니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나오면 귀신들이 놀랄 것으로 기대했나봐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무서워서 자지러지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구요. 얼마나 겁먹었는지 나무에 퍽 하고 얼굴 오른쪽을 부딪쳐 3일간 병원신세를 졌었죠”

‘폰’ 영화촬영장은 ‘귀신영화’ 답지 않게 화기애애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미니시리즈와 촬영 일정이 겹쳐 8일간 밤을 새는(!) 강행군을 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승마, 골프 등 운동으로 다졌다는 엄청난 기초체력 덕이다. 그러나 놀라워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시사 때 몇몇 장면에서 꺼칠한 얼굴에 눈이 반쯤 감긴 걸 발견했어요. 좀 크게 뜰걸…”

#서울과 부천 사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부천레이디’로 선정된 하지원은 요즘 부천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영화 ‘폰’은 ‘텐 미니츠 트럼펫’과 더불어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진이에요, 벌써”. 그녀가 웃자 눈에 초승달이 떴다. 자신의 목소리로 버스노선·극장안내 등을 녹음하기도 했다는 게 못내 뿌듯한 모양이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프로그램이 ‘짱짱’ 하다고 입소문이 났다며 레이디답게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기만 해야죠. 자리도 잡혔고, 나이 마흔에도 배우로 인정받으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할테니까요”. 한동안 구설폭풍에 휘둘리던 하지원. 이제 그녀는 무대에서 ‘오빠’를 춤과 함께 부르며 ‘만능엔터테이너’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간은 계절만 바꾸는 게 아닌가 보다.

▲26일 개봉‘폰’…띠리리리 알수없는 비명·바꾼 휴대폰 번호의 비밀

잡지사 기자인 지원(하지원)은 원조교제 폭로기사를 쓰던 중 집요한 협박전화를 받는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바꾸지만 발신자 번호를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이상한 목소리의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그 전화를 우연히 대신 받은 친구 호정(김유미)의 딸 영주(은서우)는 그날 이후로 딴 사람이 된다. 지원은 바꾼 전화번호에 어떤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이 번호를 사용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여고생 한 명은 실종됐다.

영화 ‘폰’은 휴대폰을 매개로 벌어지는 호러물이다. 그 공포는 병든 현대사회의 고름 속에서 발아한다. 호정의 가정은 단란하고 완벽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래로 간신히 쌓아놓은 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사실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녀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편 창훈(최우제)이 외도, 정확하게는 원조교제에 발을 담그자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게다가 딸 영주는 심각한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보이며 엄마를 죽일 듯 미워한다.

이 공포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꽤 고전적인 편이다. 이전에 같은 괴전화를 받은 이들이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마비 등의 증상을 일으킨 반면 초강심장을 가진 지원은 전화의 목소리와 내용까지 알아듣는 대담함을 보인다. 장화홍련전의 신관사또 같이 그녀는 살해당한 소녀를 찾아나선다.

초반부에서 협박과 폭로 등을 두고 대치하는 부분이 약간 늘어지는 게 흠. 하지만 관객의 심장에 쇼크를 주기로 작정한 듯 정제된 화면에서 때때로 터져나오는 충격적 편집, 공포스런 사운드가 일품이다. 마지막 부분에 아역 은서우가 펼치는 귀신들린 연기는 엑소시스트의 소녀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름끼친다.

부에나비스타코리아가 투자·배급을 맡아 직배사 한국영화 투자 1호를 기록했다. 아시아권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가위’의 안병기 감독이 각본·감독을 맡았다. 참고로 영화 속 괴전화번호는 안병기 감독 자신의 것이다. 26일 개봉.

/최민영기자 m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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