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라져가는 것들](4)찹쌀떡·메밀묵장수

‘목소리로 듣던 메밀묵 장수를/골목 어귀에서 만났네/커다란 함지박을 이고/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그이는/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뜨신 방에 엎드려 메밀묵 사이소를 들을 때/남정네 중에서도 장골의 목청 같던/걸걸한 외침이 쪼그라든 할머니라니…’(시인 최영철씨의 ‘메밀묵 장수’ 중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4)찹쌀떡·메밀묵장수

최신형의 MP3를 주머니에 꽂고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딴 소리를 외쳐댄다. 자정이 넘으면 주택가엔 얼씬도 안한다. 재수 없으면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을 피해 도망자 신세되기 십상이다. 어두운 골목 대신 화려한 불빛 아래의 술꾼을 찾아 호프집, 대형 포장마차로 발길을 돌린다. 어깨에 맨 스티로풀의 떡통을 다 비우고 나면 현찰 10여만원이 내 몫으로 떨어진다. 이대로라면 새학기 등록금은 물론이고 주말 스키장 비용도 마련할 수 있겠다. 2003년 2월 서울 강남에서 만난 ‘찹쌀떡 메밀묵 장수’다.

겨울밤이면 골목 어귀에서 아련히 들려오던 ‘찹쌀~떡, 메밀묵사아려!’. 사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찹쌀떡 장수를 놓쳐버리고 입맛만 다시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구수한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서울 관악구 신림역 부근에 자리한 찹쌀떡 제조·유통점인 소연유통에 가면 찹쌀떡 장수의 명맥을 잇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저녁 7시쯤 하나 둘 모여드는 찹쌀떡 장수는 30~40여명.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군인, 낮엔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컬럼니스트, 주식투자로 전재산을 날린 30대 남자, 학비 마련에 나선 대학생, 영화배우가 꿈인 엑스트라 등 젊은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소연유통의 심재완 사장(39)은 중학생 시절 떡통을 들고 골목을 누볐던 소년 찹쌀떡 장수였다. 자칭 찹쌀떡 장수의 ‘현대화’를 가져왔다는 그는 “가정형편상 어머니를 돕고 싶어 장사를 시작했지만 동네 형들이랑 밤 새워 돌아다니는 게 재밌기도 했다”며 “술취한 아저씨가 남은 떡을 몽땅 사, 횡재하는 날도 있었다”고 추억했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4)찹쌀떡·메밀묵장수

심사장은 어린시절 무겁기만 했던 나무상자 떡통을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스티로풀 통으로 바꿨다. 갱지에 둘둘 말아 팔던 통메밀묵은 한입 크기로 썰고 양념장을 곁들여 포장했다.

새알 20개가 들어있는 찹쌀떡과 메밀묵은 각각 5,000원씩. 가끔 비싸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추운 겨울밤 7~9시간을 꼬박 걸어다니며 파는 수고를 생각하면 그리 탓하기도 못하다. 찹쌀떡 장수의 성수기는 11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배우가 꿈인 남성현씨(29)는 찹쌀떡 장수 5년차다. 광고지에 난 떡장수 모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겨울이면 찹쌀떡 장수가 되지만 여름·가을에는 엑스트라로 살아간다. 대표작은 영화 ‘실미도’ ‘두사부일체’ ‘흑수선’ 등. 하얀 털모자, 점퍼, 바지, 흰색 운동화로 멋을 내 ‘앙드레 떡장수’로 불린다. 처음 한달간은 ‘찹쌀~떡!’ 소리가 나오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젠 빈 떡통을 들고가면서도 소리를 내야 편하다. 보통 하룻밤에 찹쌀떡 30여개와 메밀묵을 팔아 9만~10만원을 번다. 영화출연 기본 7시간의 출연료 3만원에 비하면 고수익이다.

동료들이 뽑은 ‘베스트 떡장수’는 장영수씨. 구수한 타령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장씨는 하룻밤에 70~75개의 찹쌀떡을 팔아 부러움을 산다. 그는 한개라도 더 팔기 위해 무거운 떡통을 메고서도 뛴다. 숭실대 재학중인 김상범씨는 열심히 발품을 판 덕분에 올겨울 1년치 등록금을 모두 벌어뒀다. 초보자는 첫날 찹쌀떡 10개, 메밀묵 4개를 들고 나가는데 절반을 팔고 오면 다행이다.

한복진 전주대 교수가 펴낸 ‘우리생활 100년 음식’에 따르면 메밀묵은 일제 강점기에 야식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시 한밤이 되면 야참 장수들이 네모진 모판에 메밀묵, 찹쌀떡, 겐마이(현미)빵, 만주 등을 담아 한족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았다. 고학생 장수들은 밤 11시, 12시경 외치고 다녔는데 겨울밤 어른들은 메밀묵을 사서 무쳐 먹었다. 요즘 떡장수들은 밤이 깊어지면 ‘시끄럽다’는 신고가 들어가 일찌감치 주택가를 빠져나오는 형편이다.

김덕권씨(70)는 “예전에는 말이 찹쌀떡이지 멥쌀로 만들어 요즘 떡 보다는 씹히는 맛이 딱딱했다”며 “하지만 그때의 찹쌀떡과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구수한 메밀묵 맛이 그립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는 찹쌀떡 장수에게도 미치고 있다. 주택가와 업소를 방문해 파는 것이 예전만 못하다. 2년전만해도 제주도에 여관방을 잡고 한달간 항공편으로 찹쌀떡을 공급받으며 장사를 하던 사람도 있었으나 요즘엔 엄두를 못낸다.

떡장수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 실직자나 청년 실업자도 많아졌다.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잃고 잠잘 곳이 없어 떡공장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일이라 여자 떡장수는 없었지만 요즘엔 일을 달라며 찾아오는 가정주부와 여대생이 늘었다.

김민관씨(24·인하대)는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이 일을 시작했다. 제대를 앞둔 말년 휴가기간에도 떡장수에 나선 그는 “한달을 꼬박 일하면 한 학기 등록금은 벌 수 있다”며 “동틀무렵까지 추위와 싸우며 밤새 걷다보면 다리도, 입도 감각이 없어지지만 일한 댓가는 달다”고 말했다.

〈글 김희연·사진 박재찬기자eggh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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