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깊이읽기

‘진화’해 온 ‘살인의 본성’

▲이웃집 살인마…데이비드 버스/사이언스북스

클림트의 그림 ‘삶과 죽음’(1911).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사랑은 종족번식을 이루어온 본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질투로 인한 살인 본능이 숨어있다.

클림트의 그림 ‘삶과 죽음’(1911).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사랑은 종족번식을 이루어온 본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질투로 인한 살인 본능이 숨어있다.

무슨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로 보이는 이 제목은 조금 당혹스럽다. 표지에 그려진 앤디 워홀 스타일의 경악하는 여자의 모습은 책 내용이 거의 ‘양들의 침묵’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제목의 ‘인’자의 밭침 ‘ㄴ’은 칼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하지만 부제를 보면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이라고 점잖게 이야기한다. 이웃집이라면 내 이웃집에서 보면 바로 내 집이니 내가 바로 살인마라는 이야기가 된다. 하단의 ‘누구나 살인 본성을 타고 난다’라는 문구에서 드디어 책 내용이 명확해진다. “아! 나에게도 살인 본성이 있다고!”

여기까지 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살인의 유혹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붙은 ‘진화’라는 낱말은. 그러면 살인 본성은 ‘진화’된 것이라는 말일까. 책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대답은 “그렇다”로 들린다. 자연선택에 있어서 살아남은 자의 생존전략으로 살인 동기가 개발됐다는 것이니까.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아직도 수렵시대에 들판에서 살아남아 자식을 낳아 대를 이으려는 심성을 가지고 도시의 숲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가. 이 언뜻 보기에 터무니없을 것 같은 주장의 근거는 의외로 촘촘하고 합리적이다. 그러기에 학문이라는 도구가 있는 것이겠지만. 살인 판타지에 대해서만 세계 각지의 5,00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결과물, 거의 43만건에 달하는 FBI 살해 사건 데이터베이스, 미시간에서 15년 동안 일어난 살인 사건 기록, 고생물학이 가진 태고의 살인 흔적들, 인류학자들이 행한 원시 부족들에 대한 기록들이 근거들로 동원된다. 이를 통해서 대다수의 살인은 정신병자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임을 조근조근 밝혀낸다.

거의 대부분의 살인이 남자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살인이 불러오는 유전자를 퍼뜨릴 확률의 증대, 대부분 살인의 동기가 되는 사랑과 질투, 군비경쟁과 자손이 살아남을 확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배우자 강탈자들과 오쟁이 진 남자들의 살인, 자신의 유전자 확산을 위한 계부의 살인 행위, 새로이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를 위한 엄마들의 자기 자식 살해, 지위와 명예가 유전자 증식에 유리한 점과 그것이 훼손당했을 때에 불러일으키는 살인 충동 등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끔찍하게 피비린내 풍기는 이야기들을 명확한 근거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잔혹한 우리의 본성 앞에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본성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준 힘이었을 것이다. 포식자들이 날뛰는 거친 벌판에서, 힘도 세지 않고, 무서운 이빨도 발톱도 없는 인간이 아이들의 느린 성장을 지켜내면서 종족을 보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서 각인되었던 것이 바로 이 살인 본성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이 남자와 여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의 아름다움은 또 얼마나 많은 음악과 문학, 그리고 미술의 소재가 되었으며 우리 문화의 가장 큰 핵심이었던가. 클림트 그림의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찬양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일 것인가. 하지만 그 여인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이면은 바로 질투이고, 이 질투는 바로 살인과 통하는 욕망이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지 벌써 150년이 되었으며, 진화와 유전이라는 것이 이제는 뚜렷하게 우리 머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술은 복제와 유전자 변형을 이야기하지만 그 많은 유전자들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진화생물학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한 갈래인 진화심리학은 그 기나긴 진화의 고리에 각인된 우리의 심성을 파헤치는 학문이다. 그래서 우리 심성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진화의 과정에 비추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급한 물살을 타고 바뀌는 인간의 사회생활 행태를 보면 앞날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미 사랑과 섹스는 종족번식과는 멀어졌고, 사람들은 쾌락만을 추구한다. 살인의 개인적인 동기들은 법률과 이성으로 억제되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가진 자의 욕망과 빼앗긴 자의 생존본능이 부딪치며 테러와 전쟁으로 살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앞으로 진화될 인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과연 인간은 여태까지 살아남은 본능을 버리고 새로운 진화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들판이 사라진 콘크리트 숲속에서 선사시대의 본능과 급변하는 환경의 변화를 마주하는 요즘의 사람들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는 의문 하나. 과연 우리에게 이런 살인 심성이 있음을 안다는 것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숱하게 인간이 저지르는 살인을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대답은 “아니다”로 끝난다. 인간에게 이런 심리적 기제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 더욱 우리의 심성을 다스리고 욕구를 억제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동물임을 알고 있는 것이 동물임을 모르는 것보다 더욱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장인용|도서출판 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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