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씨 “그만큼 유명세 치렀으면 됐지…난 구시대 인물”

1980년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이름들을 여럿 남겼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인 ‘권인숙’(명지대 교수·여성학)도 그중 하나다. 그의 이름 석 자는 반독재 투쟁에서 기폭제 역할을 했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사건이 종결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군사독재 시절의 엄혹함이나 6월항쟁의 열기를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유다.

권인숙 교수는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삶에 더 만족한다고 했다. /박재찬기자

권인숙 교수는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삶에 더 만족한다고 했다. /박재찬기자

그런데 정작 권교수의 시선은 과거를 떠나 있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그렇게 유명세 치르며 살았으면 됐지, 계속 사회 전면에 나서는 건 너무 웃기지 않느냐”고 말했다. 자신은 “구시대의 인물”이란다. 물론 역사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벗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학자로서 현시대 여성 문제에 천착하는 게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여성 문제에 관한 이명박정부의 빈곤한 철학을 비판할 때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천생 여성학자의 모습이었다. 경제 성장과 경쟁주의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낡은 사고로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염려했다. 정권을 보수 세력에 넘겨준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새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거 운동권 스타일의 지사적 가치관에 갇혀 있었던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그간 무슨 일을 하며 지내셨나요.

“특별하게 한 것은 없어요. 연구를 진행하고, ‘어린이 양성평등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어요.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다보니 아이들에게 양성평등에 관한 기본적 이해를 길러줄 교육의 기회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시민단체 활동이나 신문 기고 등을 활발하게 할 법도 한데 너무 조용하게 사시는 것 아닌가요.

“제가 워낙 명분 앞에서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 조직의 명분에 휘둘리는 게 두려운 것 같아요. 앞에 나서야 하는 삶에 대해 부담감도 있고 ‘이건 꼭 같이 하고 싶다’ 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되겠죠.”

- 세상의 이목을 끊임없이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 지치신 것은 아닌지요.

“지쳤다기보다는 그런 삶의 방식이 저하고는 잘 안 맞아요. 나서는 걸 즐기는 타입이 못되고, 나서는 일을 즐겁게 하기엔 자의식이 강해요. 연구하고 논문 쓰면서 간접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저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부담스럽죠. 안 부담스러우면 이상한 거 아니에요? 물론 사람들한테 저를 알릴 때는 유리함도 있겠죠. 하지만 불리한 측면, 불편한 점도 많아요. 사람들을 사귈 때 상대가 나한테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다가오니까. 역사적 사실의 주인공으로서 짊어져야 할, 역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은 늘 조금씩 안고 살죠. 하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는 건 없어요.”

- 사건 당시에도 민주 투사라는 이름표가 평생 따라다닐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당시엔 무게감이 훨씬 더 컸죠. 감당하기가 훨씬 힘들었고. 지금은 감당하기 힘들다거나 영향을 몹시 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요. 그냥 구시대의 인물로 살아가고 있는 거죠.”

- 당시에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을 요즘도 만나십니까.

“자주는 아니고 가끔 만나요. 그냥 같이 밥 먹고 수다 떠는거지요. 이름 얘기해서 알 만한 유명한 사람은 없어요.”

- 이번 대선 때 투표 하셨나요.

“해외에 다녀오느라 못했어요. 투표 했다면 민주노동당을 찍었겠죠. 사실 이번 대선이 민주노동당에 좋은 기회였잖아요. 이명박씨 당선이 확실시된 상황이었으니까 사표 심리가 발동할 가능성도 낮고. 그런데 권영길씨가 또 후보로 나온 게 좀 그랬죠. 심상정씨나 노회찬씨가 나왔다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을 겁니다.”

-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 여성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신지요.

“전혀 없어요. 정치를 하면 내 삶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김대중 정권 때 전국구 출마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그냥 ‘여성 중에 일할 사람이 그렇게 없냐’며 웃고 넘겼어요. 요즘도 정치권에서 오라는 소리 없어요.”

- 1999년 한 계간지에 정계에 진출하는 386세대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386 정치인들의 공과를 평가하신다면요.

“그 사람들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요. 그들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정치를 했는지 주의깊게 보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386을 비판했던 것은 그들이 운동권 내부의 위계문화, 성차별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정치를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정권이 보수 세력으로 교체된 것에 남다른 회한이 있을 듯합니다.

권인숙씨 “그만큼 유명세 치렀으면 됐지…난 구시대 인물”

“정권을 빼앗긴 민주개혁 세력의 당사자라는 느낌은 없어요. 다만 노무현 정권이 남겨놓은 문제들을 이명박정부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 그게 아쉽죠. 여성들의 낮은 정치 참여율이나 낮은 출산율 같은 문제들은 이명박식 경쟁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이명박씨는 기껏해야 ‘나도 딸이 있다’ 이런 얘기만 하고 있는데, 여성문제라는 게 이명박씨네 딸들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전반적인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인데 이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 민주 세력이 대선에서 패배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쉽고 안타깝죠. 우리 학생운동은 새로운 사회 비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나라를 살리자는 구국적인 성격이 강했죠.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런 점들을 성찰할 경험이 있었다면 노무현 정권도 많이 다르지 않았겠나 생각해요. 노대통령이 황우석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박기영 전 과학기술보좌관에게 훈장을 준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런 건 자기 사람 챙기는 구시대적 계파정치죠. ‘민주화 세력이 하는 일은 옳다’는 생각에 갇혀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지 못한 지사적 수준의 가치관이 답답합니다.”

- 요즘의 학생 운동은 어떤 것 같습니까.

“운동권이냐 비운동권이냐가 중요한 정체성이긴 하더군요. 그래도 운동권이나 비운동권이나 실천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 2003년부터 명지대에서 여성학을 강의하셨는데요.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교수님이신가요.

“인문캠퍼스 수업 정원이 55명인데 언제나 거의 다 차요. 여성 문제를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 찾아가는 수업이기 때문에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 좋아하는 편이에요.”

- 학생들은 권교수께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요.

“맨 처음엔 몰랐던 것 같은데 요즘은 더 많이 알아요. 그래도 내 이름만 보고 강의 들으러 오는 건 아닌 것 같고. 강의가 재미있다고 친구들이 권해주니까 오는 거겠죠.”

- 이명박정부가 여성부를 통·폐합한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남성들은 있었는데요. 왜 한국 남성들은 여성부 폐지에 그토록 열심일까요.

“남성들은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렸잖아요. 여성부 설치 같은 법제적 변화나 사법고시 여성 합격자 숫자 등 몇가지 사례를 과장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법고시에 여성이 몇명 붙느냐 이런 것은 일반적인 삶의 기준이 될 수 없어요. 이런 것을 여성 지위 향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천박한 일입니다.”

- 실제 여성의 현실은 통계 수치와 동떨어져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여성 현실을 보는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게 몇가지가 있는데 노동현장에서 여성이 어떻게 평가받나, 모성 이데올로기와 외모 중심적인 가치 기준에 얼마나 영향을 받나, 얼마나 많이 정치에 진출하는가입니다. 우리나라 대졸 여성 경제 참여율이 58%밖에 안돼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70%를 웃돌죠. 모성 이데올로기를 봐도 그래요. 엄마 역할을 강조하는 문화가 이처럼 극단적인 나라도 없어요. 일하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는 문화예요. 이런 사정을 다 고려하면 ‘여성 지위가 뭐가 향상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죠.”

- 이명박정부의 여성 정책에 대해 어떤 점을 우려하시는지요.

“경제를 살리자는 슬로건에 치중해서 여성 문제의 비중을 이해 못하면 현시대에 맞는 정책이 나올 수 없어요. 박근혜씨를 총리로 임명한다거나 이경숙씨를 인수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처럼 몇몇 명망 있는 여성 중심으로 여성문제에 접근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에요. 박근혜·이경숙만 보고 굉장한 양성평등을 이룬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서울대 의류학과를 다니다 제적되셨는데요. 혹시 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미련은 없으십니까.

“당연히 없어요. 재능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디자이너라는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 의식에 눈을 뜨면서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 10년 전 이혼하고 딸(고등학교 1학년)과 함께 살고 계신데요. 딸은 엄마가 과거에 한 일을 알고 있나요.

“ 나한테 물어본 적은 없는데 아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쓴 자서전도 읽은 것 같고. 딸과는 말이 잘 통해요. 딸보다 내가 요즘 가수들을 더 좋아합니다. 원더걸스의 텔미 노래도 알고, 슈퍼주니어 콘서트도 갔다왔어요.”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대학 내의 군사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대학 중간에 군대를 갔다오니까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 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이게 대학의 서열문화나 성차별 문화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봅니다. 당분간은 이 연구를 진행하는 데 몰두할 생각입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1986년 부천경찰서 형사 문귀동이 위장취업 혐의로 입건된 대학생 권인숙(당시 22세)을 조사, 고문하면서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을 말한다. 권인숙은 이 사건을 세상에 폭로하고 문귀동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같은날 공·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권인숙이 ‘혁명을 위해 성적 수치심을 이용’한다며 문귀동을 무혐의 처리, 권인숙만 법정에 서게 된다. 조영래 변호사 등 199명의 변호인단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고 전국적으로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결국 대법원은 88년 2월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문귀동은 사건 발생 3년여만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최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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