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가 죄인가요” 이란 소년의 눈물

정환보기자

사형 위기 메디 카제미의 망명 불허 논란

“사랑도 죄가 되나요.”

그렇다. 때로는 죄가 된다. 이슬람 국가에서 동성간의 사랑은 죄악이다. 그것도 중죄(重罪)다. 이란을 비롯한 시아파 국가의 경우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해진다.

2005년 7월 10대 동성애자 마무드 아스가리와 아야즈 마르호니가 이란에서 공개 처형당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영국 망명 신청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이란 소년 메디 카제미.

2005년 7월 10대 동성애자 마무드 아스가리와 아야즈 마르호니가 이란에서 공개 처형당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영국 망명 신청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이란 소년 메디 카제미.

최근 이란의 10대 동성애자가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소년의 이름은 메디 카제미. 19세 소년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망명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하면서, 각국 법원의 판결이 유럽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카제미는 15세이던 2004년,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후 4년, 꿈 많은 소년의 삶은 슬픈 드라마로 변했다.

카제미의 삼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카 녀석이 동성애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란에서 그 아이의 남자친구가 ‘동성애 죄’로 체포돼 교수형됐다는 거예요. 이란에서 동성애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거든요. 게다가 이 친구가 사형 집행 전 갖은 고문에 못 이겨 조카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네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카제미는 이란 테헤란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2006년 4월 처형이 있기 전에 남자친구가 어쩔 수 없이 다 털어놨다는 것이다. 분노한 아버지는 자신이 먼저 아들을 죽이겠다고 나섰다. 카제미는 두려운 나머지 영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했다. 이란 사법당국의 추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본국으로 송환돼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카제미는 망명 신청서에 신청 사유를 이렇게 적었다. “남자에게 끌리는 내 마음을 어쩔 수 없었음. 이란으로 돌아간다면 처형당할 것이 명백함. 이에 망명을 신청함.”

영국 정부는 그러나 망명 신청을 거부했다. 최근 외국인들의 난민·망명 신청이 쏟아져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로서는 난민·망명 심사를 엄격하게 하라는 국민적인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제미는 처음부터 망명을 위해 영국에 의도적으로 온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에 신청한 것이라고 하소연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망명 신청이 좌절된 소년은 캐나다를 거쳐 네덜란드로 갔다. 네덜란드는 동성간 결혼을 처음으로 법적으로 허용한 ‘관용의 나라’. 그런 만큼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2007년 10월 네덜란드 정부마저 망명 신청을 거부했다. 카제미는 최고행정법원까지 항소·상고 절차를 밟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영국과 다르지 않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2003년 체결한 ‘더블린 협정’ 때문이라고 했다. 더블린 협정에는 ‘처음 체류한 EU 회원국에서 망명 적부심의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EU 회원국에 난민·망명 신청을 낸 사람이 허가를 얻는 데 실패한 뒤 여러 회원국을 떠돌며 신청을 계속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네덜란드 최고행정법원의 다니엘라 템플먼 대변인은 지난 11일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더블린 협정에 따라 카제미의 영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카제미는 다른 EU 회원국에 망명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 속히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학생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학생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은 다시 영국 정부에 넘어갔다. 카제미는 “영국으로 돌아가 영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이란으로 귀국하면 아버지부터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미 세계 언론에 그의 신분이 노출된 탓에 사형을 면키는 더욱 어렵게 됐다.

이 과정에서 영국 언론에 소년의 딱한 사정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망명 홍수를 우려한 영국 정부의 결정이 도마에 올랐다. 유럽 의회는 지난 13일 결의안을 통해 EU 회원국들에 카제미를 망명자로 받아들이거나 EU 역내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통의 해법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결의안에는 ‘이란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고문, 처형이 자행되고 있다’며 카제미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영국 상원의원 80명도 재키 스미스 내무장관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소년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정심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성애 관련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동성애자 권익단체 ‘아웃레이지’의 데이비드 앨리슨은 “그를 (이란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잔인한 결정”이라면서 “이란 동성애자의 역사는 잔혹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마침내 영국 내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스미스 장관은 “카제미의 사례를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아직 망명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소년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미스 장관은 “당초 카제미의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년은 여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영국 정부의 망명 허가서를 손에 쥘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언제 다시 이란으로 송환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카제미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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