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착한’ 사랑고백이 뜬다

경향닷컴 고영득기자

“쉴 틈이 없습니다. 택배차량에 물건을 옮긴 후에도 밤늦게까지 배송작업을 하고 있어요.”

‘착한 초콜릿’이 뜨고 있다. 달콤한 초콜릿에 숨겨진 쓰디쓴 진실을 알게 된 이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초콜릿을 판매하고 이를 널리 알리려는 기업들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저개발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무역’으로 만들어진 착한 초콜릿을 판매하는 ‘한국공정무역연합’(서울 안국동 공정무역가게 ‘울림’)을 찾았다.

ⓒ한국공정무역연합

ⓒ한국공정무역연합

발렌타인데이를 나흘 앞둔 10일 오후. 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주문받은 초콜릿을 포장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전화 벨소리도 쉴새없이 울린다. 여성 대여섯명이 초콜릿을 직접 사러 오는 모습도 간간이 목격된다.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초콜릿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판 박소희씨(22.대학생)는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공정무역 초콜릿의 존재를 알게 됐다”면서 “맛도 좋고 유기농이라 더욱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고급 브랜드 초콜릿 값과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무엇보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데 한 몫 거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 구석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공정무역연합은 1년 전부터 국제공정무역 인증기관(FLO)의 인정을 받은 스위스의 ‘클라로’ 초콜릿을 수입해 팔고 있다. 원재료인 카카오는 전부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초콜릿에 들어가는 설탕 또한 유기농 흑설탕이다. 카카오 생산은 물론 초콜릿으로 가공되는 전 과정에서 ‘비난받고 있는’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공정무역은 이제야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하지만 그 성장세는 무섭다. 애초에 ‘착한 초콜릿’이 세상에 나왔을 때엔 “비쌀 것이다” “품질이 떨어지고 맛이 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반 초콜릿이 어린 아이들이 학교도 못가고 하루종일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착한 초콜릿’을 찾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는 제품은 유통되지 않기에 맛과 품질 면에서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 제품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에 따르면 발렌타인데이를 앞둔 요즘, 주문이 폭주해 “하루 평균 매출액이 평소 한 달 매출액(약 170만원)”에 달한다. 9일엔 하루 매출액만 400만원을 뛰어넘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물량 확보가 걱정이다. 현지 생산 일정에 맞춰 미리 주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출액이 급속히 는다 하더라도 공정무역 가게는 이윤 추구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국제가격이 폭락하더라도 생산자에게도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마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박 대표는 “우리는 한국 사회에 공정무역을 알리고 실천하기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라며 “한국인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게 하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공정무역연합 뿐만 아니라 공정무역 초콜릿을 취급하는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아이쿱생협, 아름다운 가게 등지에서도 전년 대비 주문량이 늘고 있다. 이 외에도 현대백화점(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과 일부 GS 계열 백화점에서도 착한 초콜릿을 만날 수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의미를 담은 홍보동영상을 제작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국제아동권리기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카카오 최대 생산지인 코트디부아르 아동교육지원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대기업이 국제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윤리적 소비 운동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미흡하다”면서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는 공정무역 제품도 취급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초콜릿뿐만 아니라 ‘Fair Play‘라고 적힌 축구공이 시선을 끈다. 전세계 축구공의 70%를 생산하는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방에서는 12세 미만 아이들이 하루 14시간씩 일하고도 1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공정무역은 초콜릿과 커피, 와인 같은 식·음료품에서 의류나 도자기 등의 수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뿌리내리며 소비자들의 ‘착한’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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