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우주를 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손제민기자

▲1마일 속의 우주…쳇 레이모|사이언스북스

[책과 삶]우주를 딛는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걷는 것만으로 도(道)를 깨우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일 테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스이스턴 마을에 사는 천문학자인 저자는 37년간 매일 집에서 캠퍼스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주변을 사색했다. 그가 ‘나의 길’이라 부르는 그 길은 1마일(약 1.6㎞), 약 3000걸음 되는 짧은 길이다. 이 짧은 길을 걷는 것이 무슨 사색을 그리 가져다 주었을까.

하늘을 보는 저자의 직업과 관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하늘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그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돌멩이 하나, 들꽃 한 송이가 간직한 이야기들에까지 미친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작은 사물들 하나하나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은 종교에서 온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찬찬한 추론에 의해 온 것이 특이하다.

가령 발부리에 차인 자갈은 수백만 년 전 히말라야 산맥이 융기한 조산 운동에서 생겨난 것이고, 토착 식물인 아네모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유럽산 식물은 300년도 더 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대륙에 발을 디딘 누군가의 망토 자락에서 묻어온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저자가 걸었던 그 풍경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던 울창한 숲이라기보다는 푸른 풀로 덮인 ‘깔끔한’ 영국의 시골 풍경에 가까웠다.

그는 “‘적절한 걸음’이란 걷고 있는 풍경에 어울리는 걸음”이라고 말한다. “한 장소를 머리로뿐만 아니라 발바닥을 뚫고 전해오는 심원한 내용의 지식으로 잘 알게 되면 갑자기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깨달음은 차라리 종교다. 1마일을 걷는 여행은 그를 우주의 시초로, 태양의 중심과, DNA의 한 복판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생각은 꼬리를 문다. “내 손자와 증손자들에겐 어떤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3세계 빈곤과 환경 파괴가 머잖아 우리 손으로 지킨 푸른 울새의 나무 둥지와 공동 채소밭에 굴복할까?” 수천마일 떨어진 지구 반대편의 우리도 대답할 책임이 있다. 오늘 저녁 퇴근 길, 비록 푸른 울새와 들꽃 한송이는 볼 수 없겠지만, 한 번 걸어보고 싶지 않은가. 김혜원 옮김.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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