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역사의 무게에 짓눌렸던 지난 시절을 말하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갖고 공장에 취직한 권인숙이 1986년 공문서변조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된다.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위장취업과 무관한 5·3 인천 사태 (국민헌법제정과 헌법제정민중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운동권의 시위로 인해 신한민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경인지부 결성대회가 무산된 사건을 일컫는다) 관련 정보를 캐내려던 문귀동 형사가 성고문을 자행한다. 권인숙은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사회에 고발하지만,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언론은 오히려 그녀를 두고 ‘성을 혁명의 도구로, 성적 수치심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한다’며 질타한다.

이에 눈과 귀는 막혔을지언정 여전히 ‘가슴은 뛰고 있던’ 국민들이 정권과 언론의 도를 넘어선 추악함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조영래, 홍성우, 이상수 변호사 등 많은 이들 역시 이 사건을 접하고 분노를 참지 못해 그 부당함을 고발하러 나섰고, 이렇게 ‘응집된 분노’는 이후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 됐다. 한 여대생의 용기가 역사를 움직인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1986년의 권인숙을 기억한다. 2012년, 그는 이제 여성학자이자 교수다. 한 국가의 역사 뿐 아니라 본인의 인생 역시 급격하게 바꿔버린 그 사건 이후로 약 25년을 더 살아왔다.

자료: 경향신문

자료: 경향신문

급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영향력이 사실은 버거웠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20대 젊은 시절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림으로써 얻게 된 유명세의 무게가 짐작된다.

자료: 경향신문

자료: 경향신문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사실 특별한 원칙은 없어요. 시간을 초월해서 유지할 수 있는 원칙을 발견한 적이 없거든요. 굳이 생각해보자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이제 명분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삶을 살지 말자’라는 판단을 내렸어요. 원칙이라면 원칙일 수 있겠죠. 젊은 시절에 명분 중심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어려운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하기도 했고요.

비슷한 맥락으로, 전부를 희생할만한 가치는 없다는 생각에 ‘너무 애쓰지 말자’가 제 삶의 태도에요. 사회적인 옳음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시기에 맞춰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꼭 정답이지는 않더군요. 물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성실해야 되는 순간들이 있죠.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면 실패한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로 안달복달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가치관이 변하신 거네요?
젊은 시절에는 확실히 변화를 꿈꾸고 그 흐름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려는 사명감이 저를 많이 지배했죠. 당시로써는 그러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사실이 큰 의미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은 계속 변해야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성인(聖人)이 된 사람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변하지 않고 일관된 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사회적 명분에 따른 활동이 젊은 시절 가장 열중하셨던 일인가요?
사회적 명분. 그렇죠. 제 20대의 삶에는 개인이 없었어요. 10여년을 그렇게 살았죠. 조금 덜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소위 민중의 입장에서 좋은 사회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몰입했었죠. 당시에는 그 명분들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회의가 정말 많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의를 감당하면서까지 명분을 우선시하며 살았습니다.

당시에 지녔던 초심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초심이란 게 무엇인가요? 초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초심도 있고 20대 초심도 있고 시기 마다 정서가 다른데, 어떤 걸 초심이라고 해야 하나요. 초심에 대한 말을 하기가 곤란한 건 아니지만 20대를 기준으로 돌아보는 일은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우리 20대, 80년대는 워낙에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불균형하게 맺어졌던 시기였다 보니 지금 와서 당시의 가치관, 그때 그 마음으로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네요.

지금 보면 20대 때가 더 훌륭했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그때 훨씬 사회적 선언도 많이 했고 성폭력 사건을 전달했을 때의 사회적 의미도 굉장히 컸고. 지금의 살아가는 방식보다 당시의 삶이 더 훌륭했던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보면.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으로 힘들진 않으셨나요?
힘들었던 순간이 그때였다고 보진 않고요. 오히려 저는 조직이 힘들었어요.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인데 집단의 강압적 측면을 소화해 내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집단의 흐름이나 기운들이 부담스럽기까지 했죠. 특히 부천 성폭력사건 이후 유명해져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 되는데 잘 부응하지 못할 것 같고, 그런 요구들을 어떻게 조절해야 될지 몰랐을 때 힘들었었어요.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자랑스럽다기보다 기뻤던 순간이 여러번 있었죠.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강사가 돼야 하나.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었는데, 마침 하버드 한국학 박사후 과정에 연구원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메일을 받고는 “아, 내가 이 분야에서 이제 경력을 열어갈 수 있겠구나” 안도 섞인 기쁨에 무척 기뻐서 소리까지 질렀어요.

본인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안성맞춤이었어요.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제 기준에는 굉장히 좋았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는데 여자아이 기를 안 죽이셨으니까요. 물론 기를 죽이려고 했는데 안 죽은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웃음) 어째든 제가 하는 선택은 항상 지지하고 후원해주셨어요. 특히 아버님은 가부장적인 면이 있으셨음에도 제 삶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으셨고요. 두 분 다 저에게 맞는 분들이셨다고 생각해요.

자료 : 경향신문

자료 : 경향신문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젊은 날, 돈이 가졌던 의미와 지금의 돈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다릅니까?
돈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돈이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무슨 의미를 갖는지 골똘히 고민해 볼 일이 없었죠. 다만 20대 때 집과 연락을 끊고 공장을 가려고 준비하던 시기에는 정말 돈이 없었어요. 수중에 오백 원조차 없었던 적도 있고 백 원짜리 뭔가가 먹고 싶은데 사먹을 수도 없었고. 그때 “아, 부모님 돈 외에는 남의 돈을 가져오기가 너무 힘들구나.” 몸서리치게 느꼈죠. 당시 너무 가난했던 경험 때문인지 지금은 돈과 관련해서는 아무도 안 믿는 것 같아요.

그 이후에도 한 동안 돈 중심의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 부모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사회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부모님의 돈을 받은 덕분이었고. 어찌됐든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돈에 대해서는 무심할 수 없다.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는 원칙을 갖고 살고 있죠. 특히 아이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이니 돈에 관해서는 항상 긴장을 해야 하고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가장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순간을 왜, 어떻게 바꾸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저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돌아가서 바꿀 수 있으면 바꿨겠죠. 당시에 제가 그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 실수니까 ‘그때로 돌아가서 잘할 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민망한 과거들이 많지만 그게 제 자신이니까요. 다만 반성과 자기평가를 통해 고민하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죠.

과거에 대해 후회가 없으신 것처럼 들리는데요.
후회가 없으면 그게 사람인가요? 후회가 없는 사람이 제일 이상한 사람이죠. 살면서 얼마나 민망한 실수를 많이 하는데. 후회가 없다는 말은 자기 성찰을 못하는 것과 같은데 그건 굉장히 위험한 거에요.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일이 정말 많아요. 20대 때 살짝 유명해졌던 사람이여서 감당을 못했어요. 그래서 관계에 있어 실수도 많이 했고요. 건방져 보일 수도 있었고 자기피해가 많았던 터라 방어적으로 사람을 대하기도 했죠. 게다가 본래 온화하고 부드러운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남한테 상처도 많이 줬을 거에요. 솔직히 결혼도 후회스럽고. 결혼형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으려 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부끄러운 일도 너무 많죠. 제가 노동인권위원회 대표 간사를 했었는데 그런 역할을 맡을 만한 나이도 아니었고, 능력과 전문성도 충분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당시 만났던 노동자들이나 상담 대상자,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자질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해진 탓에 책임을 맡았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효과적으로 행동하지 못했고 부족한 점도 많았죠.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멘토로 꼽을 수 있는 분이 아주 명확하게 두 분이 계세요. 한 분은 돌아가신 조영래 변호사님이고. 또 한 분은 제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지도교수를 맡으셨던 신시아 인로 교수님입니다. 조영래 변호사님은, 뭐랄까요, 특별한 인격의 소유자였어요. 가치판단능력도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드문 인간형이셨죠. 우리 시대에 미친 영향도 굉장히 크시지만 저 개인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부천 성폭력 사건 당시 제 변호사셨는데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뿐 아니라 이후에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제가 편견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도록 많이 지도해주신 분이에요.

그리고 신시아 인로 교수님은 그야말로 성인(聖人)이에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분이죠. 정말 사람에 대한 애정이 풍부하고, 그 애정을 실천하는 대단한 분이에요.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요. 항상 성실하시고. 저는 다소 냉소적인 면이 많은 사람인데.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신시아 인로 교수님을 연상하죠.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하고 있지만요.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과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각각 한 권을 추천(모두 2권)해 주십시오.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라고 한다면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 저)>이 기억에 크게 남아요. 대동아전쟁이라는 일본의 광기어린 흐름과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책이에요. 일본군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많이 저지를 때 주인공은 그 안에 있으면서도 광적인 집단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죠. 대학 시절 굉장히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당시 집단 속에서 개인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컸고 그런 저와 주인공의 모습이 비슷해서였나 봐요. 아시다시피 80년대는 집단의 흐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던 시기니까요.

그리고 요즘 청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은 <전태일 평전(조영래 저)>에요. 정말 읽어 볼만한 책이죠. 지난번에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조영래 변호사가) 글을 너무 잘 쓰셨어요.

출처: 경향신문 DB

출처: 경향신문 DB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어우, 진짜 고민스러운 이야기이네요. 딱 이거다 싶은 이야기를 꼽기가 힘들어요. 꿈을 좇으라고 말을 하려다가도 죄다 큰 꿈을 이야기해서. 사실 듣기 만해도 지겨울 지경이에요.

굳이 조언을 하나 하자면, 대학생 때는 ‘자기를 떠나는 삶’ 그러니까 자기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래야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가치기준이 열릴 수 있거든요. 20대 때 확립해 놓아야 30대, 40대 때 자기조절능력을 갖출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을 때는 돈이나 취업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 이해관계를 떠난 삶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아보지 않으면 건강한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돼요.

‘자기를 떠나는 삶’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대까지는 대다수가 ‘어느 대학을 갈 것인가’에 모든 걸 바치며 살잖아요. 그런데 20대가 되어서도 계속 ‘내가 성공할까. 어디에 취업할까’ 이런 고민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나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찾을 기회가 전혀 없죠. 제대로 된 고민 없이 무슨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평가할 수 있겠어요?

보다 행복해지려면 한 번쯤 ‘나’라는 틀에서 확 벗어나는 경험들이 필요해요. 그게 봉사든 사회운동이든 어떤 방법이든 간에, 자기 몰입적 가치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죠. 젊은 세대라면 타인과 사회가 중심이 되는 활동 또는 도덕이나 윤리 중심의 가치관에 발을 한 번 담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균형 있게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학력 사항
1982 ~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 2000 럿거스대학교대학원 여성학 석사
클라크대학교대학원 여성학 박사

경력 사항
2001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박사후과정 연구원
노동인권회관 대표간사
2003~ 명지대학교 교육학습개발원 교수

김정윤/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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