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50년 전무송 “지금도 내 꿈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

문학수 선임기자

아들·딸·사위와 함께 만든 연극 ‘보물’ 무대에

“지금도 내 꿈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다.”

연기인생 50년을 맞은 배우 전무송(71)은 그렇게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연극 연습실. 그는 연극 <보물>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50년간 한길을 걸어온 그에게 아들과 딸, 사위가 헌정하는 연극이다. 배우이자 극작가인 딸 전현아(41)가 대본을 쓰고, 사위 김진만(43)이 연출을 맡았다. 배우인 아들 전진우(37)는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설 예정이다. 배우 전무송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쥐약을 삼킬 만큼 궁핍했던 어린 시절, 스승 유치진의 가르침, 배우로서의 콤플렉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연극 <보물>은 11월8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들 전진우, 배우 전무송, 사위 김진만, 딸 전현아.  LSM컴퍼니 제공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들 전진우, 배우 전무송, 사위 김진만, 딸 전현아. LSM컴퍼니 제공

나는 어쩌다 배우가 됐을까? 아마 외삼촌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충남 서산의 외가를 찾아갔는데, 농사꾼이었던 외삼촌은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는 한 편의 일인극이었다. 그게 내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배우가 돼보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건 인천공고를 졸업하던 무렵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부였고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클라리넷을 불었던 내가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한데 외모가 좀 괜찮았던 모양인지 친구들이 ‘배우 한번 해보라’고 꼬드겼다. 얼굴만 잘생기면 배우 되는 줄 알던 때였다. 나도 허영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1기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한데 집에 등록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상심한 나는 쥐약을 삼켰는데, 다음날 새벽에 죽지 않고 깨어났다. 알고 보니 내가 먹은 건 쥐약이 아니라 다른 거였다. 한데 그렇게 깨어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기운이 나더라. ‘내가 죽긴 왜 죽어’ 싶었다.

배우를 향한 꿈은 우연히 다시 찾아왔다. 인천에 있는 서울신문 보급소에서 총무로 일했는데, 보급소장의 딸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안내원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소장이 내게 건네준 연극표 2장.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햄릿>이었다. 인천에서 거기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날 드라마센터에서 본 <햄릿>이야말로 내 운명의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극장은 정말 황홀했다. ‘아, 이런 데가 있었나’ 싶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김동원 선생이 햄릿이었고, 장민호 선생이 왕, 황정순 선생이 왕비로 나왔다. 연출은 유치진 선생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바로 코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를 넋을 잃고 봤다. 표가 한 장 남아 있어서 다음날에도 먼길을 되짚어 또 극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연극 프로그램 맨 뒤페이지에 실려 있던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 학생모집 공고. 그게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선반에서 꿀단지를 내리다가 깨트리는 장면을 표현하라는 것이 입학 오디션 과제였는데, 다행히 나는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드라마센터 연극과에 입학했다. 1962년 4월이었다. 신구, 민지환, 이호재, 김기수, 반효정이 동기들이다.

배우로서 첫번째 좌절을 1971년 헤럴드 핀터 원작의 <생일 파티>를 할 때 맛봤다. 스탠리 역이었는데, 연출가 유덕형이 내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날 갑자기 신구 형으로 배역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잔뜩 술을 먹고 ‘땡깡’을 부렸는데, 스승이신 유치진 선생께서 호출하셨다. 죽었구나 싶었다. 스승의 방을 찾아갔더니 담배를 권하셨다. 처음엔 사양했다. 그러자 “인마, 너 술도 잘 처먹고 담배도 골초라던데” 하시며 직접 불을 붙여 주셨다. 그러면서 “배우로서 네 무기는 관객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라고 하셨다. 또 “무대에서 배우가 말을 하는 데 10년 걸리고, 제대로 연기를 하려면 또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먼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 말을 잊지 않고 산다.

가족에겐 한없이 미안한 가장이었다. 딸 현아가 태어났을 때 우윳값이 없어서 본가의 신세를 졌다. 아내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 탓에 별의별 장사를 다했다. 옷감 짜는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다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았고, 남대문시장의 도매점에서 옷을 떼어다 팔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열등감? 물론 있다. 나는 머리가 좀 아둔한 사람이다. 작품에 대한 분석력도 약하고 순발력도 떨어진다. 남들은 한 달이면 하는 걸 두 달이 걸려야 간신히 해낸다. ‘대사를 더 빨리 외울 수 있다면 훨훨 날아다닐 텐데’라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극의 상황과 내용을 완전히 파악해야 그때부터 대사가 나오기 시작하니, 참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기특할 때도 많다. 이날까지 딴 생각 안하고 연극에 몰두해왔으니 말이다. 지금도 나는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던가, 되지 않았는데 됐다고 생각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 비록 늙어서 몸의 기능은 좀 쇠퇴했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과 마음가짐은 젊은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현역배우다. 후학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왜 배우가 되려고 하는지 열번 스무번 자문하라고,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잡념을 버리고 끝까지 매달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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