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는 1년 넘게 매일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덕수궁 대한문 바로 옆 자리에 노동의 존엄을 외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있다. 최근에는 화단도 생겼다. 노동자들과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경찰이 둘러싸고 있으며, 직장인들은 이들 사이 비좁게 난 틈으로 출퇴근한다.
지난달 5일 중구청은 기습적으로 천막을 철거했다. 임시천막이 마련됐지만 전보다 차지하던 공간은 좁아졌다.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는 대한문 앞 풍경은 점차 일상적 모습이 됐다. 쌍용차 문제 해결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어느덧 365일 하고 24일째. 123번째 노동절을 맞이해 경향신문 보도사진을 중심으로 ‘쌍용차 해고노동자 천막의 1년’을 짚어본다.
■ 2012년 봄…스물두 번째 죽음
3월 30일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고 이윤형씨(36)가 김포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실이 나흘 뒤인 4월 3일 알려졌다. 22번째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였다. 노동계가 희망버스의 여세를 몰아가려던 참이었고 21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았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4월 4일 평택 쌍용차 앞에 이어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도 분향소가 어렵게 마련됐다. 상주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천막에서 먹고 자며 분향소를 지켰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22명의 영정 앞에 빵과 국화가 쌓였다.
분향소가 처음 설치된 날로부터 49일 후인 2012년 5월 24일 구청과 경찰 당국이 분향소 철거하려 했다. 이창근 실장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공권력이 추모조차 막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경찰 당국은 “분향소는 당초 불법건축물이었지만 49재 기간까지 봐 주기로 한 것”이라 밝혔다.
천막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강렬한 저항으로 복구됐다. 다른 시민단체와 학생·예술인들이 쌍용차 분향소 옆에 새 천막을 치고 조형품을 설치해 농성장의 규모가 커졌다. 시청역 1·2호선 2번 출구부터 대한문까지 쌍용차·강정마을 등의 문제를 알리는 팻말과 천막과 꽃이 줄을 이었다.
■ 2012년 여름…대한문 앞에서 광장으로, 혹은 여의도로
6월 16일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희망버스 참가자의 사법 처리 중단을 요구하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와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주최 한 ‘6·16 희망과 연대의 날. 함께 걷자, 함께살자, 함께 웃자’ 행사에는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 소설가 공지영씨 등 시민 약 3000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여의도 걷기행사로 시작해 쌍용차 농성장이 있는 대한문 앞 문화제로 마무리됐다.
앞서 3일 쌍용차 농성장에는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방문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슬라보예 지젝 교수와 박노자 오슬로국립대교수도 농성장을 찾았다.
25일에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 모임’이 만들어졌다. 심상정,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이 제안한 이 모임에 모두 39명이 참여했다. 민주당에서 26명, 통합진보당에서 10명이 함께했다. 특히 새누리당의 남경필·정두언·정병국 의원 등 중진 3명이 참여 의사를 밝혀 모임에 힘을 실었다.
■ 2012년 가을…청문회, 대선 후보들의 방문, 국제적 지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9월 20일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청문회에서는 쌍용차 사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쌍용차 사태를 “부당한 정리해고이자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며 현 정부를 규탄했다. 여당 의원들은 “근본적인 원인은 2004년 상하이차의 ‘먹튀’를 방조한 노무현 정부에 있다”고 맞섰다. 이날 청문회에는 마힌드라 파완 고엔카 사장과 최영탁 전 쌍용자동차 대표이사가 불참했다. 진압과정의 정당성 문제와 더불어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쌍용차 회계조작 문제도 불거졌다. 노동계는 미흡한 청문회였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10월 10일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밥 킹 위원장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81개국 노동조합 대표들의 서명을 모아 방한했다. 킹 위원장은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찾아 “한국 정부는 현 사태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을진 모르지만 인권과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존중은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달 전 감옥에서 나온 한상균 전 지부장 등 쌍용자동차 해고자 3명은 이달 20일부터 쌍용차 평택공장 인근 송전 철탑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 2012년 겨울…선거가 끝난 뒤
대선기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쌍용차 분향소를 찾았다.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전태일 유족들을 만나 “쌍용차 농성장을 방문하라”는 말을 들었다. 새누리당은 대선 후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은 별다른 노동 이슈 없이 끝났다. 12월 17일을 시작으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매주 월요일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전 정권의 공권력 사용 문제와 관련된 용산참사, 쌍용차해고노동자, 4대강, 제주 해군기자 해결을 요구하는 미사를 열고 있다.
■ 2013년 다시 봄…화재와 화단조성
천막농성 333일째인 3월 3일 새벽 쌍용차 분향소에 화재가 발생해 천막 3동 중 2동이 전소했다. 방화범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50대 무직자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대위에서는 방화 배후에 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4월 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이 1년 만에 강제 철거됐다. 서울 중구청은 4일 오전 5시 50분쯤 직원 50명 정도를 투입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을 기습 철거했다. 당시 농성장에는 관계자 3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 중구청은 도로교통법 위반과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들었다. 중구청은 쌍용차 농성 천막이 있던 자리 화단을 조성했다. 화단 바깥으로 이전보다 규모가 줄어든 새 천막이 다시 세워졌다.
2009년 무급휴직에 서명했던 455명이 전원 복직했다. 하지만 밀린 임금은 지불되지 않고 있으며, 쌍용차 측은 이들에게 임금 포기 각서를 쓰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조사 요구는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