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 에세이스트
[동네적 풍경]홍어애탕

전 국민이 상중(喪中)이라 했더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전 국민은 무슨, 48%만 상중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긴 그렇다, 미개한 것들이나 상중이지. 누가 인터넷에 지금 이러고 있지 말고 대통령을 따르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쓰인 현수막 사진을 올려놓았다. 세상에나, 누구에게 뭘 보답하란 말인가? 가만히 있으라고 한 사람들에게?

상중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배 한 척 가라앉은 사건일지 몰라도 계속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이게 다 ‘내 일’이라 그렇다.

그렇다, 내 일이다. 나나 내 가족 내 친구가 아니었더라도, 그 날 거기 있었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따랐을 나. 그 승객들과 내가 다른 것은 그 날 대한민국에서 내가 있었던 장소, 즉 위치가 달랐던 것밖에 없다. 나는 뭍, 그들은 물, 오직 그것뿐이다.

이러한 ‘내 일’ 같은 감정이입과 참담함을 느낀 적은 몇 년 전 생활고로 숨을 거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안 팔리는 글쟁이, 라는 거친 카테고리로 우리를 묶어 본다면 그녀와 나는 한배에 타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를 가른 것은 나는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했고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밖에 없다. 나 역시 앞일은 장담할 수 없으니 실비보험이라도 주섬주섬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우리는 안 해본 것을 많이 해보기로 하고, 아직 홍어를 겪지 못한 친구를 위해 홍어애탕을 먹으러 종로3가로 향했다. 꼴에 두 번 먼저 먹어봤다고 선배인 양 했던 나는 홍어집을 도무지 기억 못해 낙원상가 근처를 헤매고, 친구 하나는 마치 홍어의 사회사를 연구하러 나온 문화인류학자 같은 기세로 주위 어르신들에게 홍어가 맛있는 집을 캐묻는다. 겨우 겨우 내가 전에 갔던 집을 찾아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칠레에서 헤엄치던 홍어로 끓인 애탕과 삼합을 주문했다. 삼합이야 만만했지만, 거품까지 떠먹어야 몸이 정화된다는 소리를 주워섬기는 내 앞에서 한 숟갈 떠먹은 친구들은 읏! 하고 묘한 소리를 친다. “정말로 코가 뻥 뚫리는 게 뭔지 알았다”고, 홍어애탕에 숟가락 옮기기를 주저하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잘난 척하며 혼자 거품을 푹푹 떠먹으면서, 홍어집 할머니 말씀대로 몸이 좀 정화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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