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Talk

‘지구온난화 막자’···IT 거물들 ‘23조 통큰 모금’ 나선다

주영재 기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지난 9월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5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행사에 참여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by JP Yim/Getty Images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지난 9월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5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행사에 참여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by JP Yim/Getty Images

기후온난화를 막기 위해 경제계의 거물들이 행동에 나섰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구와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빌 게이츠를 비롯한 정보기술산업(IT)의 억만장자들이 주요 20개국과 함께 공동으로 200억달러(약 23조16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주요 투자은행과 연기금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다.

기술과 자금력을 갖춘 경제계가 호응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그간의 연구 결과들이 실제적인 성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빌 게이츠 “죽음의 계곡을 매우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설립자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한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의 주요 행사였던 ‘혁신임무’ 발표회에 참석해 기금 창립 사실을 소개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민관 공동 투자안이 발표된 이 행사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이 함께 했다.

게이츠는 이 자리에서 “개인 투자자들을 결합해 공적 영역이 부담할 위험을 민간 영역으로 넘겨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며 “우리의 목표는 청정 에너지 연구를 진전시키는 것이지만 그 안에 수익을 창출한다는 목표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게이츠를 비롯한 억만장자들이 조성한 기금의 이름은 ‘획기적 에너지 연합’(Breakthrough Energy Coalition)으로 온실 가스 감축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후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금은 이들 스타트업 기업들을 “상당히 유연하고 꾸준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공공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대규모 연구 개발 투자에 민간이 나선 것은 정부의 에너지 투자와 연구 개발 보조금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충분한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관련 기술들이 실험실을 벗어나 상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게이츠는 이러한 연구와 상업화 사이의 간극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표현했다.

기금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탄소 배출을 거의 0의 수준으로 줄인, 누구나 신뢰할 수 있고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 개발”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투자 대상은 에너지 생성과 저장 기술, 교통, 산업과 농업, 에너지 시스템 효율성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으로 이들 기업을 설립 초기부터 지원하는 것으로 돼있다.

‘획기적 에너지 연합’에 투자자로 참여한 25명의 억만장자들. 20억달러를 낸 빌 게이츠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의 기부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출처:레제코

‘획기적 에너지 연합’에 투자자로 참여한 25명의 억만장자들. 20억달러를 낸 빌 게이츠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의 기부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출처:레제코

기금 조성에 참여한 이들은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알리바바 그룹 설립자 마윈 등 25명이다. 빌 게이츠는 기금에 20억달러를 출연했으나 다른 억만장자들은 자신의 투자액을 공개하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아내와 나는 청정 에너지 기술에 투자하기 위한 빌 게이츠의 혁신적 에너지 기금에 참여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정적인 기후가 없다면 세계를 연결하고 교육을 한다는 다른 도전 과제들은 의미있는 진전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출처:저커버그 페이스북 페이지

빌 게이츠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출처:저커버그 페이스북 페이지

억만장자들의 ‘획기적 에너지 연합’은 정부간 투자 계획인 ‘혁신임무’와 함께 기금을 조성한다. ‘혁신임무’에는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브라질, 사우디 아라비아, 캐나다,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개국이 참여한다.

참여국들은 청정 에너지 부분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COP21에서 개도국의 대변인을 자임한 모디 총리는 “에너지를 재생가능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모두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지구 공동의 책임이다”고 말했다.

IT 거물들과 정부의 기금 조성에 환경단체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장 프랑수아 줄리아드 그린피스 프랑스 대표는 르몽드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에너지 전환에 기여를 하는 한 경제적 논리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계 금융계, 녹색으로 향하다

지난해 9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기업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금세기까지 기온 상승을 2℃ 내로 묶는다는 목표는 정부만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원만해도 올해부터 2030년까지 매년 1조유로(약 1225조680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기업들의 ‘탈탄소’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성 분야에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청정 에너지 개발에 대한 글로벌 투자액은 2700억달러로 3년만에 최대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이 890억달러를 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해 수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510억달로를 투자한 미국이 이었다. 투자 확대로 재생에너지 관련 제품들의 가격도 낮아지고 있다. 2009년 이후 태양전지판의 가격은 70% 가량 하락했다.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에는 ‘탈탄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금융계가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은행 나티시스와 소시에테 제네날, BNP파리바를 비롯해 유럽 최대 보험사인 알리안츠 등은 점진적으로 탄소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프랑스의 기후금융연구센터 노브딕(Novethic)의 안느 카트린 위송 트라오흐는 피가로에 “알리안츠의 참여는 상당히 상징적이다”며 “6개월 전만해도 이러한 결정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알리안츠는 매출의 30% 이상을 화석연료 채굴이나 화석 연료 발전에서 얻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크레디 아그리콜을 비롯해 프랑스의 은행 대부분은 올해 초부터 탄광 회사와 일부 발전회사에 대출을 중단했다.

노브딕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6월 5일 노르웨이 의회는 일정 규모를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을 국부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채굴 활동이나 에너지 생산 등 기업 활동의 30% 이상을 석탄에 의존하는 기업이나 석탄에서 수입의 30% 이상을 얻는 기업은 국부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약 8000억유로(약 981조1520억원) 규모로 세계 최대다. 세계 증시에 흘러든 돈의 1.3%가 이 펀드에 속해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르웨이의 파격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80억유로에 달하는 시의 연기금 투자 대상에서 석탄과 석유 및 천연가스 관련 사업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물론 금융계의 탈탄소 움직임은 윤리적인 고려에서만 출발한 것은 아니다. 기후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감도가 떨어졌고, 관련 산업의 수익성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수익 측면에서 탄소 산업이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부족하지만 의미있는 출발

기업과 정부가 공동 기금을 조성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에 따르면 저탄소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의 30%에서 2050년까지 80%로 높아져야 한다. 탄소흡착 또는 탄소저장과 결부되지 않은 화석연료 사용은 2100년까지 완전히 없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추세로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공공과 민간의 주요 행위자들이 기후 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한 점은 의미있다.

마이클 브륀 시에라 클럽의 사무총장은 가디언에 “공공과 민간이 한 역사적이고 필수적이고 시의적절한 믿기어려울 정도의 공약들은 국제 공동체는 물론 세계의 지도자들과 박애주의자들이 더 광범위하고 더 빠르게 청정에너지를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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