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배문규 기자

이 시대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5세.

고인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더불어 숲> <처음처럼> 등 많은 스테디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 냉철한 사회 현실 분석과 세계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져주었는데요.

어릴 때 서예를 배운 고인은 학자이자 저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흔히 ‘어깨동무체’로 불린 독특한 글씨체로도 유명했습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그의 글씨체를 사용한 것이었죠.

성공회대 새천년관 교수휴게실에서 2008년 6월 신영복 교수가 동료교수에게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성공회대 새천년관 교수휴게실에서 2008년 6월 신영복 교수가 동료교수에게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신 교수는 어려서 조부에게 붓글씨를 잠시 배웠고, 옥중 서도반에서 만당 성주표(晩堂 成柱杓), 정향 조병호(靜香 趙柄鎬)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과거 한글 글씨체는 정적이고 귀족적인 취향의 ‘궁체’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궁체로 운동현장의 뜨거운 목소리를 담아내기에는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어머니의 모필 서간체 글씨에서 착안해 궁체에 대비되는 ‘민체(民體)’ 또는 ‘연대체(連帶體)’ ‘어깨동무체’로 불리는 서체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획의 굵기와 리듬에 변화가 많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담은 독특한 서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경향신문과 인연도 깊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처음처럼

[정리뉴스]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소주 ‘처음처럼’의 이름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혜원 크로스포포인트 대표가 추천했다. 손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은 신영복 교수는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2월 신 교수가 직접 쓴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알려졌다. 신 교수가 저작권료를 사양해 두산주류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소주 ‘처음처럼’의 이름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혜원 크로스포포인트 대표가 추천했다. 손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은 신영복 교수는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2월 신 교수가 직접 쓴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알려졌다. 신 교수가 저작권료를 사양해 두산주류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삭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경향신문과 신영복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2006년 9월 신영복 교수가 쓴 기념 휘호.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2006년 9월 신영복 교수가 쓴 기념 휘호.

신영복 선생이 2008년 4월2일 경향신문 독립언론 10주년 축하하며 보낸 휘호.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서 한국사회 소통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에서 왼편에 통할 통(通)자를 썼다. 그리고 그 활발한 소통이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푸르게 가꿀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나무를 형상화했다.

신영복 선생이 2008년 4월2일 경향신문 독립언론 10주년 축하하며 보낸 휘호.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서 한국사회 소통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에서 왼편에 통할 통(通)자를 썼다. 그리고 그 활발한 소통이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푸르게 가꿀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나무를 형상화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09년 10월31일 경향신문 지령 2만호를 축하하는 서화(書畵) ‘꽃처럼 강물처럼’을 보내왔다.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를 기록해온 경향신문이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해 장강처럼 쉼 없이 굽이쳐 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09년 10월31일 경향신문 지령 2만호를 축하하는 서화(書畵) ‘꽃처럼 강물처럼’을 보내왔다.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를 기록해온 경향신문이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해 장강처럼 쉼 없이 굽이쳐 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2006년 10월 특집대담을 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 교수가 쓴 ‘여럿이 함께’라는 글이 보인다.  | 김정근 기자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2006년 10월 특집대담을 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 교수가 쓴 ‘여럿이 함께’라는 글이 보인다. | 김정근 기자

신영복 교수가 2011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변방을 찾아서’ <괴산편>에서 신영복 교수와 도종환 시인이 충북 괴산군 제월리 벽초 홍명희 문학비 빛바랜 비문에 먹칠을 다시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신영복 교수가 2011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변방을 찾아서’ <괴산편>에서 신영복 교수와 도종환 시인이 충북 괴산군 제월리 벽초 홍명희 문학비 빛바랜 비문에 먹칠을 다시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교수가 쓴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현판.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교수가 쓴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현판.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교수가 2007년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도서실에 선물한 현판이다. 학교 측이 고른 글귀를 신 교수가 쓰고 삼목불교문화재 오영철 소장이 목각했다.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교수가 2007년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도서실에 선물한 현판이다. 학교 측이 고른 글귀를 신 교수가 쓰고 삼목불교문화재 오영철 소장이 목각했다.

신영복과 한국사회

신영복 교수가 전태일을 기리며 써준 글씨를 들고 있는 이소선 여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영복 교수가 전태일을 기리며 써준 글씨를 들고 있는 이소선 여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학자 노촌 이구영의 ‘감옥 제자’였던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스승의 시문집 출간을 기념해 쓴 휘호. 신 교수는 “남북이 통일될 그날 까지 길동무가 되어 함께 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학자 노촌 이구영의 ‘감옥 제자’였던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스승의 시문집 출간을 기념해 쓴 휘호. 신 교수는 “남북이 통일될 그날 까지 길동무가 되어 함께 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신영복 교수가 중심이 된 성공회대 서예동호회가 연 ‘인권과 평화의 교실 - 성공회대 교수서화전’에 소개된 작품.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정다운 길’이라고 쓰여있다.

신영복 교수가 중심이 된 성공회대 서예동호회가 연 ‘인권과 평화의 교실 - 성공회대 교수서화전’에 소개된 작품.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정다운 길’이라고 쓰여있다.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1994년 신영복 교수가 서울600년을 기념해 예술의 전당이 주최해 발간한 ‘서울주제 서예큰잔치’에 제출한 작품. ‘서울’이라는 글자를 산과 강으로 형상화했다.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1994년 신영복 교수가 서울600년을 기념해 예술의 전당이 주최해 발간한 ‘서울주제 서예큰잔치’에 제출한 작품. ‘서울’이라는 글자를 산과 강으로 형상화했다.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비석 받침판에 신영복 교수가 쓴 노 전 대통령의 어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정지윤 기자

경향신문 ‘변방을 찾아서’.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비석 받침판에 신영복 교수가 쓴 노 전 대통령의 어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정지윤 기자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에 쓰인 신영복 교수의 글씨.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에 쓰인 신영복 교수의 글씨.

‘색깔’ 공격

[정리뉴스]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정리뉴스]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2014년 12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2008년 개관 때부터 사용해온 이 현판을 두고 한 보수단체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민원을 제기한 뒤 교체가 이뤄졌다. 신 교수는 1968년 7월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대규모 공안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간첩단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 뒤 1988년 가석방됐다.
신영복 교수가 썼다고 현판까지 교체···아무데나 이념 잣대

[정리뉴스]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신영복 교수의 글씨가 새겨진 소주 ‘처음처럼’도 ‘종북소주’라는 웃지 못할 논란이 있었다.
[여적]처음처럼
[서재에서]오해받는 ‘처음처럼’

[정리뉴스]실천적 지식인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신영복 타계···인간과 시대의 아픔 아우른 인문학의 큰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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