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봉제기업인 “납품도 못했는데 결제 어떻게··· 앉아서 죽는거죠”

김보미 기자

이은행 일성레포츠 회장(62)은 지난 11일 오후 개성에서 막 나온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30분만 늦었어도 못나왔을 거예요. 5시부터 차 못나오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북측이 남측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한 이날 개성으로 출경했던 직원이 가지고 나온 의류 완제품은 1만1027벌이다. 5억원 어치가 조금 넘는 물량이다. 하지만 북쪽에 남아있는 물량은 27억원어치나 된다.

봉제업에 종사한지 34년째인 이 회장을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다시 만났다. 전날부터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비상총회에 참석하는 길이었다. “생산공장이 개성에만 있다. 주문 끊기지 않으려면 빨리 다른 공장을 알아봐야하는데….”

일성레포츠 이은행 회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비상총회에서 정부의 대책발표를 생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 /정지윤기자

일성레포츠 이은행 회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비상총회에서 정부의 대책발표를 생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 /정지윤기자

2000년대 초부터 국내 봉제 생산인력 수급이 어려워지자 그는 베트남이나 중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사업환경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8년 전 정부가 담보하는 개성공단에 들어갔다. 40억원을 들여 봉제 라인 18개를 만들었다. 수십년간 한 길만 걸으면서 거래해 온 2~3차 봉제 납품업체들을 설득해 130곳과 함께 개성 생산에 들어갔다. “그 사람들도 이제 50줄이에요. 나를 믿었던 이들이 앞으로 잘못된다면 비극이죠.”

위기는 계속 있었다. 개성공단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 주문량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위험성 때문에 의류 브랜드에서 충분한 주문을 주지 않았다. 그나마 그동안 쌓은 신뢰로 거래선들에서 올 가을 시즌까지 100억원 정도를 주문받아 놓았다. 하지만 당장 대체 생산라인을 구하지 못하면 납품기한을 맞출 수 없게 된다. 그는 “이렇게 전격적으로, 그것도 우리 정부가 폐쇄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 회장은 “2008년 시작 때부터 이명박 정권 지나 지금까지 계속 힘들었다”고 했다. 그 사이 2013년에도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해도 이미 개성에 공장을 세웠는데 몇 십억씩 들여서 또 설비를 세울수가 있습니까. 주문도 적어졌고요”라고 개성공단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에 18개 라인에서 850명이 일하던 일성레포츠의 공장은 최근에는 14개 라인에서 740명이 일했다.

“처음에는 20대 전후로 들어왔던 노동자들이 거의 10년간 일을 배운거죠. 이제 30대 전후의 아이 엄마들이 됐습니다. 숙련공을 키우려고 10년 가까이 투자한 것인데….” 지난달 개성에 들어갔던 것이 이 노동자들과 자신의 공장을 본 마지막 날이 됐다.

북한이 개성공단 전면 폐쇄 맞불을 놓은지 하루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는 도라산 CIQ로 향하는 차들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북한이 개성공단 전면 폐쇄 맞불을 놓은지 하루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는 도라산 CIQ로 향하는 차들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제품 구상부터 완제품이 나오는데까지 90일밖에 걸리지 않는 SPA브랜드(유행에 맞춰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브랜드)의 주문량을 맞추려면 젊은 인력의 빠른 손이 필요하다. 국내 봉제사들은 60~70대로 고령화된데다 숫자도 적어 한국에선 납기를 맞출 수 없다.

이 회장과 같이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개성공단 내 업체는 70곳, 전체 기업의 60% 정도다. 그는 “당시 대체 생산망이 간절했던 봉제업체가 많이 들어갔다. 북한에 대해 착각했던 면도 있도 있지만 정부를 믿고 간 것 아니냐”고 했다. “전 정부나 현 정부나 국민이 뽑지 않았습니까. 개성 땅은 토지주택공사가 불하한 것이에요. 국가 공공기관이 50년 임대 매각을 한 것이죠. 이 것보다 더 안전하고 정확한 투자처가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들어간거죠.”

2월 말 원자재 대금결제 시한도 걱정이다. “납품도 못했는데 결제를 어떻게 하겠나. 앉아서 죽는거죠. 정부 보상을 받는 길밖에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청 브랜드들이 외국에 대체 생산라인을 알아보자고 길을 터준 것이다. 그는 “이제 (개성은) 끝이다. 자산 몰수를 했다. 금강산 처럼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부지나 금융지원은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땅을 사도 2013년 폐쇄 때 정부 지원처럼 저금리 대출을 받을 뿐이고, 당장 1~2개월 내 제품 생산을 해야 거래선이 끊기지 않는데 언제 공장을 짓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번은 우리 정부가 공단 운영을 중단한 것이므로, 어떻게 기업들을 보듬느냐가 관건이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중소기업들만 정치적인 결정에 피해를 보게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개성공단 입주기업 비상총회 “지원이 아닌 피해 보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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