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노동’ 눈물 젖은 새우 미국 ‘밥상에서 추방’ 선언

김상범 기자

미얀마 출신 새우 가공 노동자 틴 뇨 윈은 이름 대신 ‘31번’이라 불렸다. 매일 새벽 2시면 그는 방문을 발로 차는 소리에 잠을 깨 아내 미 산과 함께 작업장으로 나간다. 그는 16시간 동안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새우 껍질을 깐다. 100명의 노동자들 중엔 작업대가 너무 높아 받침대 위에 올라서서 일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루 약 80㎏의 새우를 다듬고 받는 돈은 4900원 남짓. 돈을 벌게 해준다며 고향 미얀마에서 윈을 꼬드긴 브로커는 이들을 830달러(102만원)에 태국 방콕 동쪽의 사뭇사콘에 있는 새우 가공 작업장에 팔아넘겼다. 부부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도망칠 곳도 없다.

태국 사뭇사콘의 새우시장에 위치한 새우 가공공장에서 한 어린이가 새우 껍질을 벗기는 일을 하고 있다. 수도 방콕 동쪽에 있는 사뭇사콘은 태국 최대의 수산업 중심지다.    방콕포스트

태국 사뭇사콘의 새우시장에 위치한 새우 가공공장에서 한 어린이가 새우 껍질을 벗기는 일을 하고 있다. 수도 방콕 동쪽에 있는 사뭇사콘은 태국 최대의 수산업 중심지다. 방콕포스트

지난해 12월 AP통신은 세계에서 판매되는 칵테일 새우(껍질을 깐 새우)가 틴 뇨 윈 같은 현대판 노예들의 노동으로 생산·가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가공된 새우는 네슬레나 월마트 같은 대형 식품 유통업체의 유통망을 타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런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수산물을 밥상에서 없애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24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은 강제노동을 동원해 잡거나 가공한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관세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개정안은 아프리카에서 아동노동으로 채굴된 금,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폭행·성추행에 시달리며 짠 의류 등 강제노역·아동착취로 생산된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한다.

‘노예노동’ 눈물 젖은 새우 미국 ‘밥상에서 추방’ 선언

그동안 강제노역이나 어린이 노동으로 생산·가공된 수산물 수입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지만 미국은 관세법 예외조항 때문에 이를 금지할 수 없었다. 미 관세법은 “강요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1932년부터 시행된 예외조항은 “국내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엔 예외로 한다”며 무역업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 한 해 약 59만t의 새우를 소비하는 미국은 이 중 상당수를 태국에서 수입해 온다.

태국 인권단체인 락스타이재단에 따르면 수산 강국인 태국의 수산업 종사자 65만명 중 약 20만명이 미얀마나 캄보디아, 라오스 출신 불법체류자다. 이 중 상당수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2일에는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이 국제노동기구(ILO)에 태국 수산물업계의 강제노역을 제소하기도 했다. 태국뿐 아니라 동남아 수산업계 전반에 인신매매와 강제노역이 만연해 있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는 필리핀 청년 에릴 안드레이드가 싱가포르 참치잡이 원양어선에 팔려가 갖은 폭행과 학대를 당한 끝에 7개월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번 관세법 개정으로 수산업계에 만연한 노예노동은 상당한 제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커피나 의류 등 저개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 실태가 많이 알려져 공정무역 운동이 꾸준히 이뤄져왔지만 수산업계의 상황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전 세계 해양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범죄를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태국 정부가 불법어로와 강제노역을 방치하고 있다면서 태국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관세법 수정안을 발의한 셰러드 브라운 민주당 상원의원은 “84년 동안이나 미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것들을 수입하고 있었다는 점이 부끄럽다”며 “법안의 허점을 메워 세계에서 벌어지는 노예노동과 싸울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