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논란 김흥기·‘가짜 수료증’ 개입 中 교수, 국내서 버젓이 학술대회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유소정 인턴기자·김신애 통신원

국정원 출신 김흥기씨 빅데이터 전문가 쓰용과 국제학술대회 등장

지난 16일 호서대에서 열린 빅데이터관련 국제학술대회에 나란히 참석한 쓰용교수(왼쪽 원 안)와 김흥기씨./호서대 제공

지난 16일 호서대에서 열린 빅데이터관련 국제학술대회에 나란히 참석한 쓰용교수(왼쪽 원 안)와 김흥기씨./호서대 제공

지난 8월 16일 충남 아산의 호서대 캠퍼스에서 개막한 빅데이터 관련 국제학술대회에는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 전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난 6월 초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댓글부대’ 조직을 연상시키는 보수우파 세력들을 위한 청원사이트 구축을 제안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그와 함께 청원사이트를 기획했던 보수단체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김상진 SNS단장과 달리 김씨는 별다른 활동의 제약을 받지 않은 듯이 보였다. 김 단장은 지난달 말 세월호 특조위에 다수의 유령계정을 동원한 여론조작범으로 지목된 이후 트윗이나 페이스북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김씨의 행보는 여전히 거침이 없어 보였다.

호서대가 배포한 제4회 ITQM 콘퍼런스 개막행사 사진에는 김씨와 함께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 쓰용 교수도 보였다. 쓰용 교수는 2013년 8월 김씨가 서울 강남에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 과정을 개설해 ‘가짜수료증’ 장사를 할 때 도움을 준 인물이다. 쓰용 교수는 김씨가 2년간 한국교육원을 운영하는 동안 입학식 혹은 수료식에 참석하고, 베이징에서 반나절짜리 현장학습 과정도 제공했다. 심지어 수료증에 서명까지 해줬다. 대다수 참가자들이 김씨의 최고위 과정이 중국과학원의 승인을 거친 것으로 믿고 3개월 총 13회 수업에 3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지불한 데는 쓰용 교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특허청장, 중소기업청장 등 전·현직 고위관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강사로 동원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호서대에서 열린 빅데이터 콘퍼런스 개막식에 ‘중국과학원 사칭 사기극’의 두 주인공이 나란히 등장한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세계적 학술대회로 보기 어려운 장면들
호서대는 개막식에 앞서 전 세계 24개국에서 200여명의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세계적 학술대회가 열린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보도자료와 달리 실제 행사장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개막식 다음날인 지난 17일 오후 호서대 중앙도서관에서는 총 7개 강의실에서 14개 세미나가 예정돼 있었지만 강의실당 참석인원은 2~7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하1층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세미나는 발표자가 오지 않아 취소됐다. 전 세계에서 200여명의 석학들이 참가했다는 발표도 믿기 어려웠다. 실제 개막식 사진에 나온 참석자들은 6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참석자 중 상당수는 쓰용 교수를 따라온 중국 학생들이었다. 20대 초반의 한 학생참가자는 “중국에서만 40여명, 전체적으로는 학생 참가자가 100여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개막 기조연설자도 보도자료에는 빅데이터의 세계적 권위자인 콜로라도대학 명예교수 프레드 글로버로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했다. 도저히 세계적 규모의 학술대회로 보기 어려운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된 것이다. 대회를 후원한 8개의 외국 후원기관도 모두 쓰용 교수가 사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대학, 연구소, 학회, 기업들이었다. 쓰용 교수는 심지어 지난해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가 명칭을 변경했음에도 과거와 현재 이름을 마치 별개 기관인 것처럼 둘 다 버젓이 후원기관으로 올리는 ‘꼼수’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눈에 봐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닌 학술행사에 산업자원부와 KAIST는 후원기관으로 참여했고, 산자부 산하 KIAT(산업기술진흥원)은 예산지원까지 했다. 쓰용 교수와 김씨가 2013년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 과정을 마치 본원에서 승인을 받은 것처럼 부풀려 특허청, 중소기업청,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을 후원기관으로 끌어들인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참석자들로부터 수강료 대신 1인당 400~600 달러의 참가비를 받고 쓰용 교수가 김씨 대신 KAIST ㄱ교수를 학술대회 공동의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ㄱ교수와 쓰용 교수 모두 김씨와 서로 잘 알고 지낸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등장인물이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 대회를 주관한 호서대 ㄴ교수 등 대회 운영진 대부분이 ㄱ교수의 제자들로 구성돼 국내 빅데이터 전문가들 중에는 이번 행사가 열리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최소한 산자부가 공식 후원기관으로 이름을 빌려주고 예산까지 배정할 정도의 메이저 행사로는 보기 어려운 셈이다.

더구나 쓰용 교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더욱 의심스러운 인물이 됐다. 이번 학술대회 보도자료에는 쓰용 교수가 중국과학원 대신 미국 네브래스카대학 석좌교수로 소개돼 있다.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의 잉 리우 교수는 “쓰용 교수가 일주일에 중국과학원과 미국대학을 왔다갔다 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네브래스카대학 디팩 카잔치 정보과학기술대 부학장은 “쓰용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오래 재직한 인물로 중국과학원과는 10년 전부터 돈을 받지 않고 협력만 하고 있다”고 정반대로 얘기했다.

또 2013년 쓰용 교수가 센터와 적법한 운영계약을 체결하고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을 운영했다는 김씨의 주장도 이번 대회를 통해 설득력을 잃게 됐다. 쓰용 교수의 동료로 10년간 함께 센터를 운영한 리우 교수는 “우리 센터는 컴퓨터공학, 수학, 경영학, 경제학 전공자들만 있고 (김씨가 개설한) 지식재산 과정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연구분야”라고 했다. 김씨가 직접 계약을 하고 송금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 센터는 독립적인 계약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반드시 대학 계좌를 거쳐 수익금을 분배받게 돼 있다”고 했다.

질문에 대답 않고 빠져나간 쓰용 교수 
〈경향신문〉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학술대회 기간 중 중국을 방문했다가 지난 18일 새벽 1시쯤 재입국한 쓰용 교수를 만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없이 거칠게 취재진을 밀치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쓰용 교수의 이 같은 행보는 검찰의 늑장수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 가짜수료증 장사’와 ‘댓글부대’ 의혹과도 관련된 김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고소한 바 있다. 하지만 8개월간 5명의 검사와 3명의 경찰관의 손을 거쳐가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김씨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중국과학원을 상대로 한 사실관계 확인 요청도 벌써 수개월째 뚜렷한 이유 없이 미루고 있다. 중국과학원은 지난 3월 ‘언제든 한국 정부가 공문만 보내오면 (김씨가 운영한 과정이 불법임을) 확인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검찰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사건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단순한 사기극이라면 검찰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김씨가 2013년 빅데이터 전문가인 쓰용 교수와 체결한 계약내용에 의구심이 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김씨는 지난 6월 댓글부대 조직을 연상시키는 애국세력을위한 청원사이트 구축을 제안하면서 올 하반기에 온·오프라인 조직 출범을 예고한 바 있다. 쓰용 교수가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해 김씨와 어떤 만남을 가졌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대회를 주관한 호서대 측은 “쓰용 교수가 김씨와 함께 안 좋은 일에 연루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김씨가 어떤 자격으로 학술대회에 초청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참가자 등록 관리는 중국에서 해서 알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의혹에 ‘발뺌’으로 일관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김씨 사건이 배당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심우정 부장검사에게도 쓰용 교수의 입국사실을 알려줬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검찰이 언제까지 시간벌기를 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 조사와 경향신문의 추적보도로 2012년 대선에서 활동했던 댓글부대는 여전히 살아있음이 확인된 바 있다. 검찰이 수사를 미루면서 ‘살아있는 댓글부대’ 의혹은 이제 수류탄이 아니라 핵폭탄이 돼가고 있다. 이래저래 ‘초읽기’에 몰린 검찰이 적당히 물러설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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