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무릅쓰고 다시 포스트잇 듭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곳곳 추모

윤승민·최미랑 기자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포스트잇 모양 현수막을 들고 있다. 최미랑 기자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포스트잇 모양 현수막을 들고 있다. 최미랑 기자

“1년 전 오늘 강남역 10번 출구.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모이던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날은 잊지 못할 날이 됐습니다.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저지른 무참한 여성혐오 살해. 1년 전 5월17일을 기억하며 두려움을 무릅쓰고 붙였던 3만5000여개 포스트잇을 일 년만에 이 광장에서 다시 듭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인 17일, 서울 곳곳에서 ‘포스트잇’이 나부꼈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신촌·홍익대 인근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한 ‘5.17 강남역을 기억하는 하루행동’ 행사 참가자들이 포스트잇 모양의 현수막을 든 것이다. 참가자들은 성인 어깨너비보다 좀 더 큰 크기의 포스트잇 모양 현수막을 든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현수막에는 추모를 뜻하는 검은색 리본과 함께 ‘여성에겐 모든 곳이 강남역이다’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등 여성이 살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바람이 담겼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실제 포스트잇에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썼다.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포스트잇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최미랑 기자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포스트잇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최미랑 기자

이날 낮 12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60여명의 참가자가 숨진 여성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검은색 옷과 마스크,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남성 3명도 참석했다. 주최 측은 기자회견문에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여성폭력과 살해에 무감했던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며 “포스트잇으로, 잇단 추모집회와 거리 발언으로 일상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불편한 느낌들과 이해할 수 없던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함께 나눴다”고 밝혔다.

사건 직후 강남역에 붙인 포스트잇 외에도 여성들은 다양한 성차별 반대 활동을 벌였다. 자발적으로 여러 페미니스트 그룹을 꾸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성차별과 여성폭력을 고발했다. 지난해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에서도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폭력을 규탄하는 노력과 함께 ‘성차별 철폐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외침도 터져나왔다.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다시 포스트잇을 들다’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하며 소망과 의지를 담은 작은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5 ·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 참가자들이 1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다시 포스트잇을 들다’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하며 소망과 의지를 담은 작은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같은 날 대학가 등에서 별개로 열린 사건 1주기 추모 행사에서도 여성들은 피해 경험을 나눴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Y-FL의 주최로 열린‘여성혐오 중단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학생들은 연이어 여성혐오와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동아리 뒤풀이에서 친구가 강제로 키스를 당했지만 상담을 받아보라고 위로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저에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호명한다는 것은 제 못난 모습과 결별하고 달라지겠다는 선언”이라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추모행사에 모인 여성들은 2011~2015년 1002명의 여성이 살해되고 1037명의 여성이 살해될 위험에 놓였다는 경찰청 통계를 인용해 자신들을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여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에 있다”며 “정부는 여성을 혐오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선언했다. 또한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성평등의식의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한 학생이 ‘여성혐오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1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한 학생이 ‘여성혐오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