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아! 지겨운 학교, 언제나 쉬려나.’

기원전 2000년 무렵 어느 수메르 학생이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새긴 넋두리입니다. 학교생활,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그랬을까요.

수메르인이 새겨둔 점포판을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교사가 지극히 산만한 학생을 체벌하고, 체벌당한 학생은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우리 선생님에게 좀 뇌물 좀 줍시다”라 했습니다. 자식이 뭐라고, 아버지는 자식의 호소를 듣고 교사를 초청해서 이른바 촌지를 건넵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인류 최초의 촌지입니다. 그런데 촌지를 받은 선생님의 반응이 걸작입니다. 문제의 학생을 향해 “넌 형제들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낼 거야. 틀림없어.”라 칭찬해줍니다.

촌지의 효과일까요. 물론 지금이야 사라졌다지만 촌지는 3000년 이상 지속되어온 관행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동양은 어떨까요.

요순시대에 속하는 순임금 치하의 기록(<사기> ‘오제본기’)을 보면 ‘학생은 회초리로 다스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본격적인 학교의 기록은 상나라(기원전 1600~1046) 시대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교육 역시 상나라가 원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36회는 ‘지긋지긋한 학교, 언제부터 생겼을까’ 입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