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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폭로' 고 나병식 상임이사 '범인은닉' 혐의 재심 무죄 확정

박광연 기자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갈무리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갈무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배 중이던 대학생을 숨겨준 혐의로 복역한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김수정 부장판사)는 범인은닉 혐의로 기소돼 1976년 징역 8월을 선고 받은 나 전 상임이사에 대해 재심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나 전 상임이사는 동기생인 영화감독 장선우씨(본명 장만철)를 숨겨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달여 동안 외가 친척집 등에 머물게 했다. 당시 장씨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서울대생들의 대정부시위를 주도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수배 상태였다.

검찰은 “장씨가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는 자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숨겨줬다”며 나 전 상임이사를 범인은닉 혐의로 기소했다. 1·2심 법원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나 전 상임이사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나 전 상임이사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1976년 형이 확정됐다. 장씨는 체포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장씨는 30여년이 지난 2011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년 뒤 법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적용된 긴급조치 9호는 당초부터 위헌·무효이기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 전 상임이사는 2013년 6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나 전 상임이사의 유족들은 지난 6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8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범인은닉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도피시킨 경우에 성립한다”며 “장씨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상 장씨는 형법상 ‘범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나 전 상임이사가 공소사실과 같이 장씨를 은닉했다고 해도 이를 범죄은닉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지난달 나 전 상임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 4일 무죄가 확정됐다.

나 전 상임이사는 1979년 출판사 ‘풀빛’을 세워 1000종이 넘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는 등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을 했다. 1985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학살행위 등을 최초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출판해 1년여간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내용을 처음으로 수록한 한국사 개설서인 ‘한국 민중사’를 발간해 이듬해 투옥되기도 했다.

나 전 상임이사 측은 무죄가 확정됨에 따라 지난 21일 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한 형사보상금 지급 청구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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